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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아메리칸 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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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굴지의 투자은행이 전 세계를 상대로 거듭 띄울 정도로 한국의 역량과 잠재력은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한 예우를 받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23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주재한 오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등 12명의 정상과 함께 헤드 테이블에 앉았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터널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온 한국에 유엔이 합당한 대우를 한 것이다.

하지만 마냥 즐거워할 일만은 아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국가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나들게 되면 심각한 사회적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각한 양상으로 진행 중이다. 소득격차는 9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악으로 벌어졌고, 저소득층의 절반 이상이 적자로 가계를 꾸려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짧은 역사 때문에 유아기 단계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분의 1 수준이다. 국민연금, 실업급여, 건강보험, 기초노령연금 등 각종 복지혜택을 합친 게 그렇다. 특히 대다수의 빈곤층은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전혀 못 받고 있다. 2008년 말 기준으로 최저생계비 이하 생활자 554만 명 중 153만 명만 기초생활보장 수급혜택을 받고 있다. 401만 명의 근로자가 사각지대에 빠져 있다. 게다가 선진국에 비해 정부의 소득 재분배 기능도 매우 취약하다.

지금 식으로 가면 남북한 통합을 진전시키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가기도 전에 내부 갈등으로 탈이 날 판이다. 이제 한국은 역사적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을 맞고 있다. 미국의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 식으로 말한다면 경제 성장, 물질적 부의 축적, 독립을 중시하는 아메리칸 드림이냐 혹은 지속 가능한 개발, 삶의 질,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는 유러피언 드림이냐의 선택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어찌 보면 미국보다도 더 철저하게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해왔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도움으로 공산주의에 맞서 우리를 지켰고, 튼튼한 한·미 동맹의 울타리 속에서 경제 성장에 전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러나 어느덧 몸집이 커졌다. 스스로 성숙해져야 하고, 혼자 어려운 일을 헤쳐나갈 단계가 됐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미국 스스로도 아메리칸 드림의 가치를 회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럽 언론이 ‘검은 루스벨트’라고 했던 빈민운동가 출신 오바마를 선택했던 것이다. 오바마는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사회 통합의 길을 선택했다. 제도권 안팎의 기득권층과 전면전을 벌이면서 각종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돈이 없어서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5000만 명의 빈곤층에 그가 추진 중인 의료개혁은 구원의 빛이다. 10년 전에는 GDP에서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유럽은 48.2%, 미국이 34.3%였다. 하지만 오바마 집권 2년차인 내년에는 47.1%와 39.9%로 좁혀진다. 미국 정부가 소득분배와 사회복지에 상당한 역할을 하는 유럽 사회민주주의를 따라가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자, 다시 우리의 문제로 돌아오자. 그래도 과거의 미국식 모델을 표준으로 삼을 것인가. 그들이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버린 것을 우리가 취할 것인가. 미국을 복제하고 축소한 한국이 아니라 새롭고 진화한 한국이 되는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미국의 파트너가 되기에도 좋을 것이다. 그래야 더 친해진다. 오바마처럼 유럽식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리프킨도 리스크·다양성·상호의존성이 증가하는 세계에 걸맞은 사회복지의 확대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아메리칸 드림은 오래 전에 폐기됐어야 했다고 선언했다. 양극화의 파멸적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이명박 정부도 선제적이고 대담한 사회 통합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이하경 전략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