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십자군 영화' 제작 중 이슬람 왜곡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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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시대적 상황을 이용한 상술인가, 아니면 문화로 포장한 종교전쟁인가.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등으로 서방과 이슬람권의 갈등이 어느 때보다 고조된 가운데 미국 할리우드에서 십자군 전쟁을 그린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 등 외신들은 이 영화에 이슬람인들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있다며 논란을 예상하고 있다.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하늘의 왕국)'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내년 개봉을 목표로 20세기 폭스사에서 1억3000만달러(약 1500억원)를 들여 모로코에서 촬영 중이다. 감독은 '블레이드 러너''글래디에이터' 등을 만든 리들리 스콧이 맡았다.

영화는 2차 십자군 원정에 나선 서방의 기사들과 이슬람 영웅 살라딘과의 1187년 전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트로이'에서 파리스를 연기했던 올랜도 블룸이 살라딘에게 맞서다 숨지는 비운의 주인공 '기사 발리앙'으로 등장한다.

문제는 이 영화가 이슬람권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영화의 대본을 본 일부 이슬람권 출신 미국 대학 교수는 "영화가 '이슬람인들은 바보스럽고 호전적이다'는 고정관념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으며, 이슬람이 서방에서 선진 전투기술을 배웠다는 식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 이후 '성전'을 선포하고, 오사마 빈 라덴과 이라크의 저항 세력들이 살라딘의 후예임을 강조하며 '성전'을 부르짖는 와중에 영화가 제작되고 있어 의도를 의심받을 만하다고 지적했다. 스콧 감독은 그러나 "나는 단지 영화를 만들 뿐"이라며 자세한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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