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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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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GDP가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s)의 약자라는 건 기초상식이다. 그런데 이를 본뜬 RDP는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이는 '국내 중고 생산(Re-use Domestic Products)'으로 국내에서 중고품을 사기 위해 사용된 돈의 합계를 가리킨다. 경제용어 사전엔 잘 나오지 않는다. 일본의 이코노미스트들이 쓰는 것으로 미뤄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짐작할 따름이다.

일반적으로 공산품의 수명이 길어지고 소비자들의 재활용 의식이 높아지면 RDP가 늘어난다고 한다. 쓸 만한 중고품을 그냥 버리지 않고,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값에 팔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사회적으로도 자원절약 효과가 있다. 아이들에게 헌옷을 물려 입히고, 급하지 않으면 헌책 사 읽고, 값싼 중고차 타는 소비자들이 모두 RDP를 증가시킨다. 절약과 알뜰소비가 모여 RDP가 커진다는 뜻이다.

RDP의 성장률이 높으면 자원 재활용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RDP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RDP가 아무리 커져도 GDP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중고품 거래가 활발해져도 경제성장과는 관계 없다는 얘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고품엔 새로 생산된 부가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중고품의 거래는 한번 소비된 상품이 다시 손바뀜하는 데 불과하다. 새로운 생산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중고품 탓에 신규수요가 줄면 제조업체가 곤란해지기도 한다.

반면 중고품 매매업체가 창출한 이익이나 고용 등은 GDP에 잡힌다. 중고품 소비로 절약한 자원을 새로운 생산에 쓰거나 그렇게 모은 저축을 다른 곳에 투자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자원 재활용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산뜻한 매장을 갖춘 대형 중고품 매매업체들도 생겨났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미 1998년 중고품 거래를 유망 사업으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의 각 구청 재활용센터에선 중고품 공급이 달린다고 한다. 예전엔 새 것을 사기 위해 쓰던 물건을 처분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젠 하도 어렵다 보니 이것도 줄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RDP의 위축이 장기적인 내수부진의 전조가 아닌지 걱정된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