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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1년 … 한국, 변방서 중심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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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글로벌 금융위기 1년이 한국에 뜻밖의 수확을 안겼다. 세계경제와 국제정치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성큼 다가선 것이다. 내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의장국인 데다 4차 G20 정상회의 개최까지 유력시되는 상황, 세계에서 가장 빨리 위기를 극복해 내고 있는 경제적 성취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룰 추종자’(Rule taker)에서 ‘룰 입안자’(Rule maker)로=한국은 4월 금융안정위원회(FSB:Financial Stability Board)에 가입했다. FSB는 선진 7개국(G7)이 주도했던 FSF를 금융위기를 맞아 확대 개편한 최고의 금융 선진국 클럽이다. 국제금융 질서를 만드는 한편 국제금융 경찰 기능을 수행한다. 예컨대 회계 기준과 금융회사 보너스 규정도 FSB가 만든다.

그러나 FSB 회원국이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 회원국에 배정되는 대표 수는 나라마다 다르다. 함께 토론하면서 각종 금융 표준을 만들기 때문에 대표가 많이 참석할 수 있는 나라가 유리한 구조다. G7 국가엔 세 자리가 배정되는 반면 브릭스(BRICs) 4개국은 두 자리를 받는다. 한국도 두 자리다.

여기엔 뒷얘기가 있다. 당초 한국엔 한 자리가 배분돼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모르고 있었다. 가입 승인 직전 우리 정부에 살짝 귀띔해 준 이는 일본 측 G20 회의 관계자였다. 그때부터 우리 정부는 사공일 G20 기획조정위원장을 중심으로 FSB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사방으로 뛰었다. 결국 “개도국을 대변하는 한국에 어떻게 한 자리만 줄 수 있느냐”는 집요한 항의가 막판에 먹혀들면서 한국은 브릭스와 똑같은 대접을 받게 됐다.

내년 G20 재무장관회의 의장국이란 사실도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매번 G20 정상회의에 앞서 합의 초안을 만들고 있는 G20 재무장관회의를 내년에 한국이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과 호주가 자국 재무부 공무원을 기획재정부 G20 기획단에 파견키로 한 것도 한국을 돕는 한편 글로벌 경제의 새 규범에 입김을 조금이나마 불어넣어 보자는 의도다. 최근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에 공동으로 G20 관련 국제회의를 열자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1월에만 국제금융연합회(IIF)와 금융연구원의 국제 콘퍼런스를 비롯해 5건의 회의가 예정돼 있다.

◆한국 목소리 ‘G20 합의문’에 담겨=1, 2차 G20 정상회의 합의문엔 한국이 내놓은 제안이 많이 녹아 들어갔다. 워싱턴 1차 회의 선언문엔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보호무역 동결(Stand-Still)’이 포함됐다. 2차 회의 때는 영국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재정지출 확대, 개발도상국들을 위한 무역금융 확대 합의 등을 관철시켰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대하는 태도도 변하고 있다. 사공일 G20 기획조정위원장이 10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비공개회의에 초청받은 것도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 주는 사례다. IMF는 매년 연차총회 때 극소수의 인사만 모아 국제금융시장 동향을 논의하는 비공개회의를 연다. 1월에도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국제금융계의 거물 30여 명을 불러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가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당시엔 우리 측 인사는 초청받지 못했다.

◆"내년 G20 개최지, 서울 유력”=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의 제4차 회의가 내년 서울에서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3일 익명을 전제로 “미국 피츠버그 3차 회의에 이어 4차 회의가 열린다면 서울이 가장 유력하다”면서 “현재 회원국 중 한국의 개최에 반대하는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4차 정상회의 개최지는 현지시간으로 25일 오후 5시(한국시간 26일 오전 6시)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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