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가치관 교육으로 저출산 해결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5면

올해도 거의 5조원 가까운 막대한 정부 예산이 저출산 극복을 위한 수많은 정책에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전혀 회복의 기미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저출산 대책 주무부서인 보건복지가족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치관 교육 중심의 인구 교육을 하겠다’는 법안(인구교육지원법)을 준비하고 있다.

인구학자 입장에서 볼 때 이 법안에 제시된 인구 교육의 내용과 대상 그리고 방법론에 문제가 많아 보인다. 먼저 법안의 전제가 맞지 않다. 법안은 청소년 및 일반 국민에게 출산과 가정의 소중함 등을 교육하여 국민 인식을 개선하는 인구 교육을 실시한다고 되어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저출산의 근본적인 해결은 국민 개개인의 의식 개혁이 전제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법안을 마련했다.

문제는 가치관이 저출산의 주요 원인이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일반 가치관은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한국인 가치관은 다른 가치관과 달리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결혼, 출산, 이혼 등에 대한 한국인의 가치관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매우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급격한 사회 변동의 소용돌이를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대한 가치관은 거의 그대로다.

따라서 가치관 교육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전통적 가족 가치관이 약화돼 아이를 안 낳는다는 전제를 깔고 출발하는 인구교육지원법안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법안은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초저출산 현상의 사회구조적인 원인 해결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킬 우려까지 있다.

새 법안에서 예정하고 있는 각종 실천방안에도 문제가 있다. 새 법은 사회 인구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에 인구교육지원센터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 인구교육지원센터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면 막대한 조직운영비가 발생하게 되고, 각종 사업비 명목으로 매년 예산이 증가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인구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전문 인력도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지원센터를 운영할 경우 내실 있는 교육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서둘러 시행할 경우 주 교육 대상이 이미 출산을 마친 중장년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출산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국가 예산을 낭비할까 우려된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인구 교육이 필요하다면 가치관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고등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인구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인구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대학에서 인구에 관한 교육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고급 인구 전문가를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거의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구 현상에 대한 수많은 기초, 심층 연구가 필요한데 인구 연구에 대한 지원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기초 연구가 부실한 상황에서 서둘러 해법을 찾다 보면 엉뚱한 정책이 나오기 마련이다.

OECD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유럽 선진국을 벤치마킹해 현재의 자녀 양육비 지원제도를 확충하면 0.51명의 출산율 상승 효과를 가져온다. 이 밖에도 보육 관련 시설을 확충하면 0.43명, 여성의 시간제 취업 효과를 극대화하면 0.19명의 출산율 상승 효과가 예상된다. 정부는 이들 표준화된 정책 변수의 출산율 상승 효과를 고려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농촌에서 시작된 출산장려금 제도를 전국 수준에서 일원화·체계화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선 지식이나 교육보다 정부의 구체적 실천이 중요하다.

전광희 충남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