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르는 '비디오 바이러스'-영화 '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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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영화 '링' (김동빈 감독) 엔 요즘 한국영화의 특별한 '기류' 가 담겨있다. 하나는 '여고괴담' 과 '조용한 가족' 를 비롯 '스크림'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 인기를 모은 공포영화의 맥락 위에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영화가 '한.일 합작영화 1호' 라는 것이다. 또 국내에서 리메이크된 일본영화라는 점에서 '실락원' '산전수전' 의 뒤를 잇는다.

이런 기류에서 만들어진 '링' 은 두 가지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일본영화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 창조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영화로 완성되든가 혹은 '모방' 과 '창조' 의 기로에서 원작의 그늘 아래 묻혀 버리든가.

흥미진진한 스즈키 코지의 원작소설을 읽은 관객들이 많다는 것은 이 영화가 안은 또 하나의 짐이다.

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의문의 죽음을 낳는 한 편의 비디오다. 죽은 자의 기억을 담아 움직이는 이 비디오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7일만에 죽고 만다는 것이다.

우연히 이 비디오를 본 신문기자 선주 (신은경) 는 죽음을 부르는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믿는 의사 최열 (정진영) 과 독소처럼 퍼져나가는 죽음의 미스테리를 파헤쳐 간다.

'링' 이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은 '긴장감' 을 살리는 것이었다. 일상 어딘가에 숨어있는 알 수 없는 힘, 죽음에 대한 공포로 가장 정적인 상태에서 고조되는 불안 등이 이 영화가 의도한 긴장감의 요체였다.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어떤 방으로 들어가는 어린 아이, 한밤중 혼자만 있는 방에 자극적인 볼륨으로 울리는 전화벨 등에 액센트를 찍은 것 등이 그같은 의도를 잘 드러낸다.

하지만 누가 걸었을 지 모를 전화벨소리가 공포가 되지 못하고 소음으로 그쳐버릴 만큼 영화는 긴장의 미학을 충분히 살려내지는 못했다.

'약속' 에서 눈에 띄는 연기를 보여줬던 정진영. 이번 영화에서 현실에 대한 냉소와 미지의 것에 대한 오기가 넘치는 독특한 성격을 연기했지만 스크린에 잘 녹아들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원작이 공포에 중점을 두었다면 한국판 에선 인간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미스테리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싶었다" 는 것이 김동빈 감독의 설명. 그러나 원작 나카타 히데오 감독이 만든 '링' 보다는 장면장면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일본영화 '비밀의 화원' 을 구임서 감독의 '산전수전' 이 그대로 베꼈다는 비난을 받았던 경우. '링' 은 '다르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욕은 보였지만 원작에서 방송사 기자인 주인공이 한국영화에선 신문사 기자로 묘사되는 등 지엽말단적인 것의 변용에 그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일본 흥행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 중 완성도에서나 흥행에서 이미 '실락원' '산전수전' 등의 실패가 있었기에 더욱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따라서 지금 충무로에선 '일본영화 리메이크' 를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한 영화기획자는 "리메이크의 이유가 문화적인 필요보다는 단순한 상업적 의도로 출발한데도 문제가 있다" 면서 "일본영화를 주체적으로 재해석하고 창조력을 발휘하려는 자세가 아쉽다" 고 말했다. 12일 개봉.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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