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재수의 난' 박광수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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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을 하던 사람이다. " '이재수의 난' 을 연출한 박광수 (44) 감독의 이재수에 대한 인물평.

1901년 당시 제주 대정군수의 통인노릇을 했던 이재수는 한성순보 등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국내외 정세를 꿰뚫고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박감독은 이재수가 민란의 우두머리로 서게 된 동기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그러나 영화는 섣불리 이재수를 '영웅화' 하지는 않는다. 객관적 접근이랄까. '역사 해석을 관객들의 판단에 맡긴다' 는 식의 유보적 자세가 배어 있는 듯하다.

지난 88년 '칠수와 만수' 로 데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등 주로 사회성 짙은 주제에 천착해온 박감독. 그가 말하는 '이재수의 난' .

- 이재수를 통해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인물에 대해 솔직히 우리는 잘 모른다. 나는 그저 이재수를 통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제주도, 나아가 한국인의 보편적 인물상을 그리고 싶었다. "

- 1백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1901년 당시는 유교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근대사상과의 갈등, 동북아 세력균형의 와해 등으로 복잡하게 돌아가던 시절이다. 비록 시대가 바뀌었어도 이와 유사한 변동요인은 지금도 있지 않을까. "

- 영화에서 '까마귀' 가 상징하는 것은.

"무속 (巫俗)에서 까마귀는 영혼과 인간의 매개 역할을 하는 존재다. 이는 곧 시공을 초월한 한국인의 정체성을 표상한다. 때문에 까마귀는 역사의 격랑과 사상의 변동, 갈등 위에서 '응시' 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물론 검은색 현무암 지대인 제주도를 상징하기도 하고. "

- 사건과 인물에 대한 설명이 약해 '행간' 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지 않다.

"간혹 이야기가 튄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거야말로 '내 방식' 이다.

시시콜콜하게 설명하다 보면 역사적 사실의 재현에 머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

- 이재수를 연기한 이정재에 대한 평은.

"잘했다. 역할에 맞게 인물의 톤도 잘 잡았고, 대사를 재치있게 처리하는 솜씨가 많이 늘었다. "

- 올 칸 영화제 진출이 좌절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이미 내 전작 5편이 국제영화제에 나간 적이 있어 특별히 서운한 감은 없다. 어차피 프랑스 합작품이어서 프랑스에서도 개봉될 것이고. 9월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될 것으로 안다. "

- 감독으로서 흥행 예상과 앞으로 계획은.

"흥행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은 워낙 돈이 많이 들어 부담스럽다. 이제 20세기도 저물어 가고 있으니 앞으로는 전혀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 보다 신선하고 '재미' 있는 영화 말이다. "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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