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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증 난 벽지·가전제품 색깔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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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빨간색 승용차가 주유소의 기계식 자동 세차장을 통과하면 파란색으로 바뀌어 나온다. 상상으로만 가능할까. 서울대 신공학관 연구실에서 최근 만난 권성훈(34)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머지않은 장래에 이런 기술이 상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휴대전화·노트북이나 냉장고·세탁기도 마찬가지다. 바탕 색깔에 싫증이 나면 어렵지 않게 색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가 최근 개발한 것이 그 제품이다. 자기력을 가하면 스스로 조립해 특정 색의 빛을 반사시키는 자성 나노입자 용액 ‘M-잉크’(사진)다. 설명이 좀 어렵지만 따라가 보자. ‘M-잉크’는 빛을 반사해서 내는 색이라 시간이 꽤 지나도 변색·탈색이 되지 않는다. 또 자체 제작한 ‘마스크리스 리소그라피’ 장치를 이용해 자기력의 세기에 따라 색을 조절하고 자외선으로 이를 고정하면 해상도 높은 ‘구조색(Structural color)’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구조색은 또 뭔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나노미터 크기의 미세한 구조물과 빛이 상호 작용해 만들어진 색이다. 화학염료가 아닌 빛을 재료로 삼은 ‘자연의 색’이다.

“기존 염료로는 표현하기 힘든 색들이 있어요. 모르포 나비(Morpho Butterfly)의 날개 색상을 보세요. 그 푸른 날개빛이 일반 염료에서 나올 턱이 없죠. 하지만 나비 날개의 구조처럼 자장을 만들면 거의 흡사한 빛을 낼 수 있어요.”

곤충은 매우 다양하면서 아름다운 색상을 지녔다. 그건 특정 염료가 들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안의 나노 구조에 따라 천변만화의 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자도, 컬러디자이너도 아닌 그가 어떻게 ‘자연의 색’을 욕심내게 됐을까.

“사무실 벽지는 늘 그대로죠. ‘기분에 따라 벽지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 거예요. 초대형 디스플레이로 벽을 꾸미거나 발광다이오드(LED) 판을 붙이는 방법도 있지만 에너지 효율이 떨어집니다. 빛을 쪼여 구조색을 만들고 이를 응용해 ‘바다 속에 있는 듯한’ 또는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의 벽지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M-잉크’ 기술은 아무 표면에나 적용할 수 있다. 그래서 자동차와 전자제품은 물론 건물 내·외장재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다양하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포토닉스’ 9월호에 실렸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선두권인 두 업체가 연구결과의 상용화를 논의하기 위해 다녀갔다고 했다.

“앞으로 3년 안에 바탕색을 바꿀 수 있는 휴대전화가 등장하지 않을까요.”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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