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프랑스의 작가 장 클로드 카리에르가 쓴 '영화, 그 비밀의 언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느 날 그에게 소르본대학의 역사학 교수가 말했다. "우리는 이제 푸아티에 전투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유럽이 수백년간 인종적 우월감과 타 문명을 경멸하는 근거로 삼았던 역사적 사건이 '날조'나 '사기'였다는 것이다. 그 교수의 주장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가 꼭 사실과 부합하지는 않으며, 때로 없던 사실도 만들고 실재했던 사건도 지우거나 변형시킨다는 해석은 음미해볼 만하다.
역사는 힘과 힘이 부딪치는 각축장이다. 과거를 '기록하는' 건 항상 승리한 자의 몫이자 권리다. 권력이 역전되면 '공식적인 역사'도 뒤바뀌고 패배한 자의 역사는 다시 삭제되거나 음지로 숨게 된다. 소련 시절 크렘린의 주인이 바뀌면 사진에서조차 이전 집권자의 흔적을 지웠다. 미국은 서부영화를 통해 인디언을 학살한 과거를 표백하고 자신들을 정의로 둔갑시켰다. 최근 중국과 한국이 고구려사를 놓고 벌이는 신경전도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패권을 쥐려는 과정에서 돌출한 현상이다.
정치권이 '과거사 청산' 문제로 소란하다. 일제 식민지에서 독재 시대까지 굴절된 현대사가 심판대에 올랐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늘 때를 놓쳤다는 데 있다. 8.15 직후 해방 공간에서 친일 문제는 온 국민이 공분(公憤)하던 것이어서 절호의 기회였다. 10.26도 유신 시대를 '정리'할 찬스였다. 그러나 모두 친일.독재 정권의 대두로 수포가 됐고 그게 후대에 역사적 짐이 되고 있다.
냉정히 말해 지금의 문제는 역사를 새로 쓸 만큼 권력 이동이 완벽히 이뤄지지 못한 데 있다. '신기남 사건'에서 보듯 도덕적으로도 상대를 압도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니 앞으로 지루한 싸움이 이어질 게 뻔하다. 늘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 진실 앞에서 겸허해지자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이영기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