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험증 확인 거의 안 해…건보 부정사용 참 쉽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환자 바꿔치기 방식의 신종 병역비리가 적발되면서 건강보험 도용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현행 건강보험법상 모든 환자는 진료에 앞서 건강보험증을 제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건강보험증이 대부분 사라졌고 본인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의료기관이 환자의 신분 확인을 소홀히 하다 보니 병역 브로커가 환자를 바꿔치기 할 수 있었다.

16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체포한 병역 브로커 윤모(32)씨는 이런 관행을 악용했다. 미리 관리해 온 환자 A가 응급실에서 진료받을 때 군대를 면제받으려는 멀쩡한 젊은이 B의 주민등록번호를 대는 수법을 썼다. 이렇게 하면 B의 진료 기록에 A의 질병이 있는 것으로 기록돼 B는 병역을 면제받거나 공익근무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17일 서울의 한 대형 대학병원 응급실. 한 시간여 동안 접수하는 사람을 지켜봤지만 아무도 건강보험증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접수대장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적었다. 병원 측은 건강보험증은 물론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 병원 원무계 직원은 “몇 년 전부터 건강보험증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건강보험법은 보험 혜택을 받으려는 환자는 건강보험증을 제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보험증을 지참하지 않았다면 다른 신분증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거나, 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진료비를 낸 뒤 일주일 이내 보험증을 제시한 후 환불받도록 돼 있다. 요즘 의료 현장에서는 본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일부 노인이 보험증을 지참한다.

병원이나 약국은 건보증이 없는 환자가 오면 성명과 주민번호를 물어본 뒤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의 가입자 자격 확인 서비스를 이용해 건강보험 가입이나 보험료 체납 여부를 확인한다. 이게 전부다. 본인 여부는 확인하지 않는다. 종전에는 병원이나 약국이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의무화했으나 건강보험법에서 이 규정이 빠졌다. 환자 편의를 도모한다는 취지에서다.

환자들로선 보험증을 굳이 갖고 다니지 않아도 돼 편리하지만 이번 병역비리처럼 언제든지 악용할 소지가 있다. 지난해 의료기관이 환자의 신분 확인을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는 건강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병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렇다 보니 매년 건강보험 양도나 도용 행위가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550건의 양도나 부정사용이 적발됐다. 2005년 134건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올해 7월 현재 264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부정적발 사례 중 이번 경우처럼 건강보험증 소유자가 알고도 양도 또는 대여한 경우가 248건이었고, 분실된 건강보험증을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는 부정사용이 302건으로 집계됐다.

건강보험공단 측은 “이대로 가면 이번과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질 것”이라며 “환자들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환자의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가 도입돼야 부정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