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애니메이션 감독 스티브 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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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세계 최초' 라는 수식어는 매력적이다. 그 말은 부 (富).명예.영광 등과 같은 단어로 쉽게 치환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열매' 를 제대로 따지못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재미교포 애니메이션 감독 스티브 한 (56.한국명 한상호) 도 그런 '불운' 한 인물이다.

그가 85년 만든 '스타체이서' 는 세계 최초의 장편 입체애니메이션이란 제목으로 기네스북에까지 오르며 미국개봉 1주일만에 매표 수입 4백50만달러 (약 54억원) 를 올렸다. 60년대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도미, UC샌디에이고 영화학과를 졸업한지 20여년만의 일이었다.

"원래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렵게 파라마운트 촬영부에 들어가긴 했지만 할리우드의 벽은 동양인에겐 너무 높더군요. 그동안 익힌 감각을 애니메이션으로 승화시켜보려고 했습니다. "

74년 귀국해 동서동화를 설립하고 미국 TV애니메이션의 주류 작품들을 의뢰받아 제작해오던 한감독은 78년 한호흥업을 세우고 독자적인 작품 모색에 나선다.

" '스타워즈' 의 흥행성공을 보고 SF가 가장 비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별화를 하려다보니 입체영화를 생각하게 됐죠. " 특수안경을 쓰고 보는 입체영화는 왼쪽과 오른쪽 눈의 각도가 다른 점을 감안해 핀트의 엇갈림과 시각적 착란 효과를 극대화한 것. 하지만 영화도 아니고 한장 한장 그려야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이 효과를 내기란 결코 쉽지않았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죠. 감각만으로 두 눈의 편차를 정확히 그려내기엔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캘리포니아공대 (칼텍)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의뢰했는데, 제작비의 15% 이상이 개발비로 쓰였습니다. "

1년6개월에 2백50만불이면 될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82년11월부터 85년4월까지 2년5개월간 무려 1천1백만불이 투입됐다.

그해 추수감사절, 미국 1천12개 극장에서 동시개봉된 이 작품은 '신시내티 저널' 에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별 셋을 받는 등 현지언론으로부터 '대단히 잘 만든 걸작' 이라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배급을 맡았던 애틀랜틱 리리싱의 급작스런 부도는 그의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빼앗았다.

물론 국내개봉도 할 수 없었다. 스티브 한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잊혀 갔다. 3일부터 시작된 서울애니메이션센터 개관기념 영상제에서 '스타체이서' 가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LA에서 작은 독립프로덕션을 운영하는 스티브 한은 '감독' 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고국을 찾았다.

'금의환향' 은 아니었지만 아주 빈손도 아니었다. 판권을 둘러싼 오랜 송사가 최근 MGM사로 귀결되면서 그의 작품은 빠른 시일 내에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다시 선보일수 있게 된 것이다.

"저는 이 작품에 제 젊음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를 이제라도 보게 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한국에도 저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지닌 '하룻강아지' 들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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