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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12. '참여연대' 참여그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시 민단체는 이를테면 알갱이 소리를 모아 큰 소리를 내는 집음기 (集音機) 와도 같다.

억압에 눌려 제목소리를 내기 힘들던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그러나 87년 6월 항쟁 이후 시민들의 '소리' 가 터져나왔다.

시민단체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그 '소리' 들이 커졌다.

94년 9월, '참여연대' 라는 새로운 시민단체가 출범을 알렸다.

그들은 민중운동.노동운동과 함께 가는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제 5년째을 맞는 참여연대는 서울 안국동의 종로경찰서 건너편 안국빌딩 3층에 세들어 있다.

출범 초기에는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는 1단짜리 기사 하나에도 환호를 올렸으나 지금은 종로서 출입기자들을 바쁘게 할 만큼 상황이 바뀌었다.

참여연대에 참여한 지식인들은 크게 보아 양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박원순.조용환.안경환.차병직. 한인섭. 박은정. 이은영. 김칠준씨등 인권변호사.법학자그룹이고 또하나는 조희연. 김호기. 손혁재. 박호성. 김동춘. 유팔무. 박찬욱씨등 비판사회과학자그룹.

이들은 정치투쟁적이고 반독재운동적인 80년대 진보적 지식인상과 달리 90년대의 변화된 상황에 대응하며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참여의 방식으로 풀어보려는 사람들이다.

애써 모은 시민의 소리를 공허한 울림으로 끝내지 않으려는 이들의 구체적인 '대안찾기' 가 참여연대를 단기간에 굴지의 시민단체로 성장하게 한 비결이다.

기존의 인권변호사 운동을 다양한 시민운동적 차원으로 발전시킬 생각을 갖고 있던 박원순 변호사 등은 93년 중순께부터 조희연 교수등 진보적 시민운동을 구상하던 비판사회과학자그룹,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인연합' 김기식 사무국장 등 운동권 출신의 청년그룹과 함께 불암산 유스호스텔 등지에서 밤샘 토론을 벌인 끝에 새 시민단체를 만들기로 '도원결의 (桃園結義)' 한다.

분야가 다른 인권변호사와 비판사회과학자그룹이 하나로 접합하기까지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도 엿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명칭논쟁' .당시 비판사회과학자그룹은 명칭 속에 '참여민주사회' 와 '시민' 의 개념을 넣자고 주장했으나 인권변호사그룹은 '시민' 이란 표현에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인권' 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맞섰다.

비판사회과학자들은 '인권' 이 고문사나 의문사같은 말을 연상시켜 운동의 범위를 좁힐 거라는 우려를, 인권변호사들은 '시민' 이란 단어가 반사이익을 노리는 집단들에 의해 오염돼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결국 '참여 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 라는 긴 이름으로 결론이 났다.

이 명칭은 올 총회 때 '참여연대' 로 줄였다.

이 렇게 만난 참여연대 지식인들은 보수.중산층적 시민운동에 대립하는 ▶진보적 시민운동 ▶정책적 시민운동 ▶법률적 시민운동 ▶종합적 권력감시운동 ▶인권운동 등의 목표를 내걸고 종전과 다른 시민운동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법' 이 독재정권의 억압도구이자 수단으로 악용되곤 했으나 전문적인 법 지식을 가진 인권변호사그룹이 참여연대의 주축을 이루면서 이제는 법을 시민 권익을 보호하고 민중 생존권을 지키는 도구로 활용하게 됐고, 환경.부정부패.사회복지.재벌문제.소액주주운동 등 과거 민중운동이 포괄하지 못했던 이슈들까지도 진보적 관점에서 대안정책을 내놓고 싸우는 '영토확장' 을 하게 된 것이다.

박호성 서강대 교수, 박은정 이대 교수가 각각 초대 소장을 맡았던 의정감시센터와 사법감시센터를 비롯, 인권센터.내부비리고발자지원센터.공익소송센터 등 참여연대의 초기 사업부문은 막강한 의회권력과 사법권력에 당당히 맞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참여연대가 출범 후 1년 동안 벌인 사업은 '삼풍백화점 수사방향에 대한 항의문 전달' (95년 7월) '5.18 관련 특별검사제 도입에 관한 입법청원' (8월) '전직 대통령 비자금수사 촉구 시민대회' (8월) 같은 것들이었다.

여기에 98년 이후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비롯한 하승수.김균.조원희 씨등 경제민주화그룹이 가세하면서 참여연대의 지명도가 한층 올라가게 된다.

특히 이 땅에 처음 소액주주운동을 도입한 장교수는 제일은행 경영진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경영권 세습을 위한 부당 증여행위' 제소, 오너 2세에 주식을 헐값으로 넘긴 SK그룹에 대한 시정요구 등을 통해 '재벌개혁의 민간전도사' '소액주주의 대부' 등의 별명까지 얻었다.

지난 6일에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단장으로 15명의 교수.변호사.회계사가 참여하는 '재벌개혁감시단' 이 출범해 정부의 재벌정책과 재벌에 대한 상시 감시활동을 시작했다.

참여연대에 참여한 지식인들은 '대안제시형 시민운동' 이라는 새 방식을 만들고, 사회복지.경제정책 등 새로운 시민운동의 주제들을 시민적 참여와 발언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그 공헌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시민 참여가 부족한 운동환경은 그들이 풀어야 할 과제다.

또 시민단체들 사이에 반복되는 모방적 운동의 길에서 벗어나 제3세계 시민운동이 본받을만한 새로운 운동의 전형을 만드는 일, 즉 '운동의 세계화' 도 참여연대에 참여한 지식인들이 정한 목표의 하나다.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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