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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동양무술의 만남-美흥행돌풍 '매트릭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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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할리우드에서 영화 한 편이 흥행돌풍을 일으키면 국내 극장들도 덩달아 일렁거린다. 할리우드의 흥행이 국내 흥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 이런 '대박 영화' 를 배급할 영화사 (대부분이 직배사다) 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이 영화를 유치하기 위한 극장 관계자들의 작전은 치열해진다.

영화 '쉬리' 한 편을 제외하곤 딱히 별다른 흥행작이 없었던 극장가를 뒤흔들고 있는 작품이 바로 15일 개봉 예정인 '매트릭스 (15일 개봉)' 다. 3월31일 미국에서 개봉돼 첫 주에만 3천3백만달러 (한화 약4백50억원) 를 벌어들여 올 박스오피스 최고 기록을 올렸고 셋째 주를 제외하곤 4주째 흥행1위를 차지하고 있는 화제작이다.

이 영화는 'SF무협액션영화' 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다. 기계문명과 투쟁하는 인간얘기를 그린 SF액션이지만 현란한 쿵후를 '주무기' 로 내세웠다.

영화는 AI (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가 지배하는 최첨단 미래사회와 그에 맞서는 '무리' 의 싸움을 그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1999년이 사실은 인공지능 컴퓨터에 의해 지배되는 가상현실일지도 모른다고 설정한 역전의 발상이 신선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토마스 앤더슨 (키아누 리브스) 은 매트릭스의 실체를 깨닫고 인류를 구원하는 전사다.

'터미네이터' 를 연상시키는 컴퓨터그래픽 몰핑기법, 뇌세포 입력과 삭제를 보여주는 사이버 시뮬레이션, 광케이블을 이용한 공간이동, '스타크래프프트' 의 모탈리스크를 닮은 순찰병기, 미래의 여전사…. 독특한 CG로 살려낸 유려하고도 그로테스크한 영상이 가장 큰 볼거리다.

키아누가 빠른 총알을 그보다 더 빠른 액션으로 피하는 장면과 검은 코트와 선글래스 차림으로 총알을 손에 쥐는 빠른 액션에 래리.앤디 워쇼스키 형제 감독의 스타일을 중시한 연출이 돋보인다. 영화 '바운드' 한 편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들이다.

쌍권총을 들고 유연하게 몸을 날리는 키아누의 몸짓엔 '첩혈쌍웅' '영웅본색' 을 연출한 우위썬 감독 특유의 액션영상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풍부한 볼거리로 밀어 부친 '매트릭스' 는 복잡한 플롯에까지 욕심을 부린 탓에 액션이 없는 중간장면을 다소 지루하게 만들어버렸다. 지나치게 많은 '그림' 을 보여 주려는 욕심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한다. 남녀 주인공이 감정적 교류가 없다가 키스를 나누며 연인이 되는 마지막 장면. 멜러에 대한 할리우드의 강박이 쓴웃음을 짓게 하는 대목이다.

'매트릭스' 에서 감독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맛보긴 어렵다. '종합선물세트' 의 공허함마저 비친다. 그러나 세기말 현대인의 불안을 속도와 힘이 넘치는 액션으로 해소한 점이 미국 관객들을 끌어들인듯 싶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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