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섹션구성 좀 더 다양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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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7면

중앙일보가 어느 신문보다 앞서 전문기자 제도를 도입하고 지면의 섹션화를 시도한 것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신문의 바람직한 자세로 크게 환영받을 만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한편으론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현상들을 보도.분석.평가하는 데에 이제 기자들에게도 전문가적 식견이 필요하게 됐으며 다각적인 현상과 관심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지면을 분야별로 섹션화해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만큼 발전하고 분화했기에 우리 신문들이 해야 할 일들도 늘었고 그 자질도 높여야 했던 것인데, 중앙일보가 이 점을 인식해 맨 먼저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그래서 한국의 신문문화를 선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다른 신문도 더러 전문기자 또는 대기자란 이름으로 중앙일보를 뒤따르기도 했고, 섹션화는 이제 거의 모든 신문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섹션지면 구성에 내가 흡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본지와 나뉜 두 개의 섹션은 경제.스포츠로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과 의식에 경제가 가장 중요하며 일상의 재미는 스포츠를 비롯한 대중문화에서 얻는다는 점으로 이 섹션 구성이 이해되긴 하지만, 애초의 섹션화가 가져야 할 특성을 그것은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관심들을 분화시켜 일간 지면의 한계 때문에 수용하지 못할 심도있는 분석과 해설을 주간지적인 편집으로 집중시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 것이다.

내가 문화계, 그것도 문학.출판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가령 선진의 권위지가 발행하는 '문예부록판' 정도를 염두에 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중앙일보의 지면이 서평 등의 도서문화면에 소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요일에 따라 큰 기사로 다뤄지는 '신작을 찾아서' 와 '학계 동향' 이 신간 책들을 계기로 저작자.학계를 소개하고 있고, 올해 새로 기획된 '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밀레니엄 인터뷰' 가 국내외의 지식사회를 조망해주고 있거니와, 특히 매주 목요일자의 3개면에 걸친 '책 속으로' 는 여타 신문의 서평을 압도하는 입체적인 구성으로 책에 대한 우리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그것은 종래의 서평이나 저자 인터뷰 형식만으로 이뤄지던 지면을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자칫 따분하거나 까다로울 수 있는 도서문화 기사들을 재미있고 쉽게 읽히도록 만든다.

가령 지난달 29일자 '책 속으로' 를 보자. 고정란이 매우 다양하게 구성된 것이 우선 눈에 띈다.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한 출판인의 '북메이커의 편지' , 중견 사학자가 해외 신간을 자유롭게 읽는 '김기협의 책 넘나들기' , 최근 역간된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 에 대한 철학자의 '서평' , 그리고 올해의 기획으로 해외 문단을 소개하는 '떠오르는 밀레니엄 작가' 가 그것들이며, 여기에 당연히 '화제의 책' '신간 리뷰' '금주의 베스트 셀러' 가 붙어 있다.

그러니까 책 소개.평가만이 아니라 책을 공급하는 출판계의 입장, 출판시장의 동향에다 해외출판 정보까지 수용해 도서 문화를 다각적으로 바라보게끔 한 것이다.

이런 지면구성이 빛을 발하는 것은 3개 면의 중심 기사로 자리잡은 자상한 신간 해설이다.

29일자의 그것은 기자가 네 권의 신간을 엮어 오늘날의 지식.정보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설명하는 '미래의 경제는 정보화가 좌우' 란 표제의 글과, 중국 총리 주룽지 (朱鎔基) 의 생애와 개혁 프로그램을 서술한 '중국 개혁 이끄는 의인' , 그리고 책을 통해 신세대 기질의 계보를 그린 '마음대로 살아라…길은 많다' 였다.

이 글들은 한 주제에 대한 집중 분석, 한 추세에 대한 통시적인 접근을 통해 고급 학술.중급문화의 전기 (傳記).대중문화 보고 (報告) 라는 세 층위를 망라하고 있다.

나는 '서평' 이란 이름의 고정란이 보다 많아지고 길어지기를,가능하다면 뉴욕타임스의 '문예부록' 처럼 도서면이 무게 있게 섹션화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기자들의 향상된 자질과 편집 책임자의 높은 안목으로 이뤄지는 '책 속으로' 의 이 정도로 우선 자위하고 있는 것이다.

김병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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