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스승의 날에 받은 어머니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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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록이 싱그럽고 훈풍이 감미로운 5월은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 날.성인의 날들이 함께 있어 서로를 기억하며 정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달이다.

5월을 맞으면서 오래전에 한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옛 이야기와 우리 어머니에게서 받은 선물이 생각난다.

딸이 없이 쌍둥이 아들만 기르던 그 어머니는 '어머니날' 이 가까워지면 어린 두 아들이 무슨 선물을 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은근한 기대감이 생긴다고 했다.

기다리던 어머니날, 한 아들이 작은 손으로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고 손수건을 선물로 주었을 때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면서, 다른 아들은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까 하고 더욱 궁금한데 하루가 다 지나도록 아무 선물도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좀 서운했지만 무심한 성격인가 하고 접어두었는데 다음날에야 카네이션을 들고 와서 어제는 많은 사람들이 꽃을 사기 때문에 꽃값이 너무 비싸서 값이 내리길 기다렸다 하루 늦게 사왔다며 자신이 돈을 아껴쓰면 어머니가 더 기뻐할 것 같아 그렇게 했다고 꽃을 늦게 산 경위를 설명하더라는 것이다.

한날 한시에 난 쌍둥이가 왜 그렇게 서로 다른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면서 평소 돈을 절약하고 저축을 잘해 무척 대견하게 생각됐던 그 아들이 막상 어머니날 꽃 한송이를 사는데도 절약정신을 발휘해 하루 늦게 꽃을 달아주었을 땐 그 어린 아들에게 매우 섭섭한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날 가슴에 꽃을 달아주던 그 아들은 평소 돈 씀씀이가 헤퍼서 똑같이 용돈을 주어도 벌써 떨어졌다며 또 용돈을 달라고 졸랐지만 그날따라 인정있어 보이고 인정있게 구는 그 아들의 앞날이 더 밝게 기대되더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행복은 가까운 데 있고 사소한 것에서 느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었다.

모든 부모들은 자식에게 거의 맹목적으로 조건없는 사랑과 정성을 쏟으면서 자식에 대한 기대감을 희망으로 안고 살아간다.

그러한 부모들의 속마음에는 자식과 밀도높은 유대감을 공유하고 싶어 하고 살뜰한 정을 나누고 싶은 것이 어버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자식이고 또 자신도 부모가 돼 자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식에게 바라는 그 소망을 살아계신 자기 부모에게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모두 효자.효녀가 될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노인문제가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곧잘 품안의 자식이 자식이지 품밖의 자식은 남과 같다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자식에 대해 짐짓 체념한 채 노경을 외롭고 쓸쓸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어버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성공과 성취가 곧 손에 잡힐 것만 같아 더 큰 일,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듯 몰두하며 분주하게 살아간다.

그러느라 가깝고 소중한 인연들에겐 미처 관심을 갖지도 못하고 따뜻한 배려도 해보지 못한 채 뒤로 미루다 도망가듯 빠져나가버린 세월 앞에 마치 굴복이라도 하듯 인생의 석양을 바라보며 세월의 덧없음과 아쉬움을 떨치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오르고 싶은 사회적 욕망의 그 정상에 다 오르지 못하더라도 인간이 지켜야 되는 도리를 묵묵히 지키며 가깝고 소중한 인연들의 소망과 바람을 채워주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행복을 가꾸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외롭지 않은 준비가 될 것이다.

그러한 삶이 더 풍요롭고, 후회스럽지 않을 인생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필자도 5월을 맞을 때마다 젊은 날 어머니로부터 스승의 날에 받았던 선물의 의미를 반추해본다.

우리 어머니는 20대에 홀로 되시어 슬하의 두 자매를 길러 원불교 교무가 되도록 이끌어 주셨다.

항상 하신 말씀 "넓은 세상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해라. 그렇게만 한다면 이 어미는 너희들을 끝까지 가르칠테다" 하시며 50년대의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우리 자매를 끝까지 가르쳐 주셨다.

우리 자매가 30대에 원불교 교무가 돼 개척교화를 할 때 어머니는 스승의 날마다 두 딸에게 비단 속바지를 지어 소포로 보내시며 "스승의 날에 이 어미는 네가 많은 사람을 구원할 큰 스승이 되길 빈다.

그리하여 나중엔 이 어미까지라도 건져줄 만한 큰 스승이 되어주길 간절히 축수한다" 는 사연을 보내주시곤 했다.

두 딸이 수도자의 외길을 온전히 가도록 인생의 길목을 지켜주시며 격려해 주신 그 큰 사랑과 은혜를 이제서야 더 잘 느낄 수 있게 됐다.

박청수 원불교 강남교당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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