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 '지식'과 '신지식'의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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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득의만만하게 주창했던 '신지식인 운동' 이 최근 예기치 않았던 역풍을 맞아 주춤거리고 있다.

그 역풍도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신지식인 운동' 을 적극 환영하고 그에 앞장 서주길 기대했던 지성계로부터 나온 것이라 정부로선 적잖이 실망스럽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것은 없고 당황할 것은 더더군다나 없다.

세상이 온통 돈이 전부인듯이 돌아가고 있고 경제난으로 인해 그에 관한 반론조차 제기하기 어려운 것이 요즘 상황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오해든 아니든 지금까지 '신지식인상' 이 풍겨온 물신주의 (物神主義) 냄새에 대해 지식사회가 즉각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로 보아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다.

이른바 '신지식' 이 경제적 부 (富) 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크며 그 때문에 '신지식인상' 이 강조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신지식인' 주창자들도 그렇다고 경제적 부를 가져다 주기만 하면 그것이 곧 신지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의 '신지식인' 논리는 마치 그런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 이론적 뒷받침이 엉성한 탓도 있지만 '신지식' 이란 개념 자체가 적절하지 못한 데 더 큰 원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신' 이라고 하면 대번 '구 (舊)' 가 연상되고 그것은 낡고 못 쓰는 것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이내 결부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돈 버는 게 신지식이고 돈 못 버는 것은 구지식이며 쓸데없는 것이냐는 반발이 반사적으로 나오게 돼 있다.

사실 '신지식' 이란 개념은 정부측에서 그저 지나가다 말하듯이 툭 던져만졌을 뿐 엄밀히 정의된 적도 없고 학문적 이론이 제시된 적도 없다.

한 코미디언, 한 농부의 좋은 착상이 그 예라고 제시되고 있어 정부가 무슨 뜻에서 '신지식인' 을 주창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갈 뿐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설명으로는 정부가 말하는 '신지식인상' 은 초기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장관으로 일했던 전 하버드대 정치경제학교수 로버트 라이시의 '창조적 전문직 (symbolic - analytic services)' 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라이시는 '국가의 일' 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직업을 크게 단순생산직 (routine production services) , 대인 (對人) 서비스직 (in - person services) , 그리고 창조적 전문직의 세 가지로 나누고 앞으로 창조적 전문직과 기타 직업간의 소득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국가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많은 국민들이 이 창조적 전문직에 종사할 능력을 갖추도록 교육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라이시에 의하면 현대에서 창조적 전문직에 속하는 직업은 리서치 학자, 설계 엔지니어, 홍보관계 이사, 창조적 회계사, 법률가, 경영 컨설턴트, 전략수집가, 기업의 인력 스카우트 담당자, 건축가, 영화촬영기사, 작가 및 편집인, 언론인, 음악가, 대학교수, 농업자문가, 영화제작자, 토목공학가 등등이다.

그러나 이런 직업에 종사한다고 해서 무조건 창조적 전문직업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예컨대 변호사라도 계약서.이혼서류 작성과 같은 단순한 일을 반복하거나 대학교수라도 30년을 똑같은 강의만 한다면 그는 전문 직업인으로 분류될 수는 있어도 창조적 전문가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라이시가 분류한 창조적 전문직이 바로 현재 정부가 말하고 있는 '신지식인' 을 의미한다면 '신지식인' 이란 개념이 과연 적절한가 여부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직접적으로 '돈' 을 만드는 지식인만 신지식인이지 가치와 정신을 생산하는 지식인은 신지식인이 아니란 말이냐는 반발은 원천적으로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라이시가 분류한 창조적 전문직에는 정부의 '신지식인상' 에 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대학교수.작가 등이 오히려 그 대표적인 직업으로 포함돼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성계의 비판이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신지식인상' 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변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식사회의 비판을 그릇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이제까지 정부의 설명으로는 돈벌이가 되는 지식이 신지식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기가 십상이었다.

또 최근 지식사회로부터 또 한가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부 등 정부의 무지는 더욱 그러한 느낌을 갖게 했다.

'지식' '신지식' '인문학' 에 관한 정부의 상세한 설명과 이론제시를 기대한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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