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별 과잉설비 실태] 멈춰선 기계 아직 수두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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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의 설비는 아직도 과잉. ' 지난 1년여동안 각 분야에서 기업 구조조정이나 합병.인수 (M&A)가 활발히 이뤄졌지만 아직 대부분 업종에서 설비 과잉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철강.자동차.섬유.시멘트 등은 심각한 상태다.

자동차의 경우 최근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 40%대까지 떨어졌던 평균 가동률이 1분기 58.3%로 높아지긴 했지만 적정가동률 (80%)에는 아직 턱없이 못미치고 있다.

철강.석유화학은 올들어 가동률이 더 떨어졌고, 이동전화 등은 지금도 투자가 계속되고 있어 '과잉'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후의 M&A 및 사업 조정에도 불구하고 과잉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것은 대부분 외형적으로 회사만 합쳤을 뿐 실질적인 설비.인원 감축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원 최희갑 수석연구위원은 "현 상태론 연내 기업 설비투자나 이에 대한 자금 수요가 되살아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 말했다.

정부도 심각성을 감안, 북한 또는 해외 이전을 검토하고 있으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업종별 현황을 점검한다.

◇ 자동차 = 기아.삼성자동차가 각각 현대.대우로 넘어가면서 2사 체제로 재편됐으나 생산설비는 남아 돈다. 국내 자동차 생산능력은 4백14만대 (97년 기준) 지난해 수요의 2배를 웃돌고 있다.

경기가 다소 나아지면서 지난해 40%대에 머물던 가동률이 높아졌으나 수익성을 맞추기에는 어려운 수준.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소림 정보조사팀장은 "자동차 업체의 적정가동률은 80%선이며 최소 70%는 돼야 회사 유지가 가능하다" 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경기가 나아져 가동률이 높아질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세계적으로도 생산 시설이 남아 돈다" 면서 "한동안 기술 분야 외에는 신규 투자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세계 자동차 공급능력은 약 6천7백60만대로 수요 (5천2백65만대) 를 1천5백만대 가량 웃돌고 있다.

◇ 철강 = 과잉이 가장 심각한 부문. 수출이 잘 됐던 지난해에도 철강 생산량은 3천9백52만t (생산능력 4천5백9만t)에 그쳤다. 올해는 수출을 줄여야 할 판이라 형편이 더 어렵게 됐다.

외환위기의 한 원인을 제공했던 한보철강의 매각은 지지부진하며 다른 분야의 설비조정도 지지부진하다.

유상부 (劉常夫) 포항제철 회장은 "철강설비는 지난 90년 수준이 적당했다" 며 "그 이후 건설된 1천4백만t은 모두 과잉" 이라고 지적했다.

◇ 이동전화 = 지난해 말 한 전문지가 해당분야 종사자 5백명을 대상으로 휴대폰 업계의 구조조정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4%가 '필요하다' 고 응답했다.

해당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조차 '정리'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 휴대폰 업계에는 현재 SK텔레콤. 신세기통신. 한국통신프리텔. 한솔PCS. LG텔레콤 등 5개사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빅딜을 통한 대형화 문제가 한때 거론됐으나 지금은 쑥 들어가버린 상태다. 이들 업체들이 전국에 깔아놓은 기지국은 1만1천여개. 교환기.전송장비 등을 합친 이들 업체의 투자총액은 8조원이나 된다. 이들은 올해도 2천억~5천억원 이상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어 상태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 섬유 = 엄청난 유휴설비로 업계의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돼 있다.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업계 전체로 4백만추의 정방기중 10%가 놀고 있는 상태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유휴설비를 북한에 이전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며 "이 경우 방적기 50만추.직기 2만대 정도를 옮길 수 있다" 고 말했다.

최희갑 삼성 수석연구원은 "경우에 따라선 설비를 감축해야만 신규 투자도 가능해진다" 며 "과잉 조정을 위한 업계 협력이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 시멘트 = 건설경기 위축으로 여전히 남는 설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양회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시멘트 생산능력은 6천1백만t (중간제품인 크링카 기준)에 달하지만 4천6백9만t을 생산,가동률이 69.2%에 그쳤다. 올해 사정이 약간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가동률은 73.6%에 그칠 전망.

김동섭.차진용.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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