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어머니가 미국 딸에 보낸 편지 인터넷에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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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은퇴한 기자 이반카 베세비치 (74.여) 는 유고 수도 베오그라드에 사는 세르비아인이다.

그곳에서 태어난 그녀의 딸 실비아 밀러 (30) 는 9년 전 미국인과 결혼, 샌프란시스코에 산다.

나토의 유고공습은 이 모녀를 졸지에 적국민으로 만들었다. 지난달 24일 공습이 시작되자 밀러는 어머니의 안전을 걱정하며 일기와 E메일, 그리고 전화를 통해 현지상황을 알려주도록 요청했다.

웹디자이너인 그녀는 어머니의 회신을 영역 (英譯) , 인터넷 웹사이트 (www.keepfaith.com)에 띄우며 전세계에 반전 (反戰) 을 호소하고 있다.

다음은 베세비치의 메시지를 일부 발췌한 것이다.

▶그날 (공습일) =사이렌이 울렸을 때 나는 친구집을 방문 중이었다.

끔찍했다. 50여년 전 나치 전투기가 침공했을 때 동생들과 숨어서 듣던 그 소리였다.

바로 얼마전에도 방문했던 나라들의 그렇게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오늘, 이 시대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공습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모든 것이 정상적이다.

가게들도 문을 열었다.

혼자 사는 한 친구는 벌써 모든 걸 포기하고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동생들과 먼 곳에나마 딸이 있으니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 29일 = 난 이제 공습경보가 울려도 방공호에 가지 않기로 했다.

이 나이에 매번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너무 벅차다.

게다가 그곳은 축축하고 어둡고 먼지로 가득하다.

창문도 없는 곳에 아이와 어른으로 꽉 차 공기가 금세 나빠진다.

▶3월 30일 = 공습은 어젯밤부터 1시간 정도를 제외하고 계속됐다.

하지만 매일 더 나쁜 처지의 사람들을 보면서 불평조차 잊는다.

아직 내겐 음식과 잠자리가 있으며 가족 중에 공습으로 죽은 사람도 없다.

공습 후 오히려 사람들은 협동적이다.

부모가 음식을 구하러 간 동안 아이들을 서로 봐주기도 하고 잠자리나 음식.약품 등을 나누고 있다.

▶4월 4일 = 밀러가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왔다.

부활절을 축하해줬다.

우리의 생명줄인 전화선은 아직 무사하다.

그앤 나의 힘이다.

전쟁을 하는 이들이 생명이 없는 전쟁기계처럼 느껴진다.

나는 지금 머리를 감으려 한다.

언제 따뜻한 물도 끊길지 모르니까.

▶4월 6일 =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곤 유럽지역과 전화선도 끊겼다.

지난달 월 2백달러이던 연금을 4분의1밖에 못받아 약값에 다 써버렸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4월 16일 = 이 웹사이트 때문에 밀러가 걱정이다.

(미국정부로부터) 무슨 일을 당하진 않을지.

▶4월 18일 = 공습이 밤낮으로 계속된다.

이 와중에 18쌍의 남녀가 자유광장에서 단체결혼식을 올렸다.

모두들 모여 축복해줬다.

평화안을 거부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태도가 밉다.

▶4월 19일 = 총공습이 시작될 것 같다.

사흘간 창문도 열지 말라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해외에 이민가 있는 친척들을 찾아가겠다고 한다.

도시에 우리만 남을까 겁난다.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어린애들이라도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어야 할텐데….

[딸 밀러 E-메일 인터뷰]

- 웹사이트 개설 이유와 당신 모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

"어머니를 구하려면 전세계에 현지의 표정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를 통해 병마와 싸우고 계신 어머니와 마음 속으로나마 끝까지 함께 하고 싶었다. "

- 네티즌들의 반응은.

"전세계로부터 따뜻한 격려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용기를 얻는다. 중앙일보의 관심에 감사한다. 늦기 전에 전쟁이 끝날 것을 바라는 어머니 심정을 한국인들에게도 꼭 전해달라. "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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