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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울지하철공사 노조가 결국 파업에 들어갔다.

이번 파업의 특징은 단순히 1~4호선 지하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노총 주도로 공공연맹의 30여개 산하 노조와 연대해 파업분위기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뒤이어 금속산업연맹과 합쳐 대정부 투쟁을 벌이겠다는 일정까지 잡고 있다.

여기에 24일 오후 서울역앞 집회를 비롯해서 5월 1일 노동절까지 연일 집회투쟁을 하겠다는 방침을 정해 놓고 있다.

이 투쟁 방침이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향한 목표인지 우리 모두 함께 걱정해야 할 중대 사안이다.

우선 민주노총 투쟁의 시발이라 할 지하철 파업은 명분 약한 불법파업으로 출발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15일간의 냉각기와 직권중재도 거치지 않은 불법파업이다.

파업의 핵심쟁점인 구조조정문제에서도 노조는 명분을 잃고 있다.

하루 10억원의 적자를 내는 지하철공사로선 어떤 형태로든 뼈를 깎는 고통분담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00년까지 2천여명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근무형태도 현행 4조 3교대에서 3조 2교대로 하자는 안을 세운 것이다.

현재 지하철 ㎞당 운영인력을 보면 2기 지하철 (5~8호선) 의 도시철도공사는 55명, 런던 지하철 46명인데 비해 서울지하철공사는 85명으로 엄청나게 많다.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그런데도 노조는 오히려 근무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일체의 구조조정을 반대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지난 10여년 동안 유사한 형태의 불법파업에 익숙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익숙한 눈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작된 파업투쟁에서 어떤 명분도 찾아 보기 어렵다.

예전 같으면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투쟁이라는 최소한의 명분이나마 갖췄다.

지금은 그마저 없지 않은가.

어려웠던 경제위기의 지난 한해를 넘기면서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조가 보인 성숙된 협상자세에 국민 모두 고맙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그 고마움이 원망으로 바뀔 형편이다.

이번 파업은 시민의 발을 묶는 단순 차원의 고통이 아니다.

지켜야 할 법을 무시하고 세워야 할 원칙을 무너뜨린다면 간신히 넘기고 있는 위기상황의 경제가 재추락할 수 있는 위험마저 안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기회에 지켜야 할 법이 무엇이고 양보할 수 없는 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긋는 용단이 필요하다.

선거를 걱정해서 정치적 양보를 한다든가, 좋은 게 좋다는 식의 타협이 돼서는 건전한 노사문화의 정착은 영원히 기대할 수 없다.

경총이나 한국노총은 이른 시일안에 다시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해야 한다.

당초 노사정이 국민 앞에 맹세했던 국민협약 준수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민주노총도 넓은 시야에서 노사가 함께 사는 길이 무엇이며, 우리 경제의 앞날과 시민생활의 편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금 생각하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기를 당부한다.

강경투쟁은 모두의 패배만 가져올 뿐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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