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창작 오페라 '황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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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전통과 현대의 만남' 이라는 숙명적인 과제가 창작 오페라만큼 절박하게 와닿는 음악장르는 없다.

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이 오른 오페라 '황진이' (작곡 이영조.연출 이장호) 는 등장인물들이 시조 (時調) 로 풍류를 즐기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니 작곡자의 고민을 짐작할 만하다.

'황진이' 는 투박한 '소재주의' 의 함정에는 빠지지 않는다.

작품 전편에 걸쳐 흐르는 여러 편의 시조에 간혹 5음음계의 가락을 붙이고 장구 반주를 전면에 부각시키면서도 오케스트라로 음악적 공허함을 채워 한 단계 성숙된 음악세계를 보여주었다.

타악기 사용을 절제했고 1.2막의 현악 위주의 음색에 이어 3.4막의 관악기의 활약이 분위기를 고조시켜 무대와 등장인물의 잦은 교체에 따른 극적 단절감을 덜어주었다.

2막의 피날레를 장식한 황진이의 아리아 '청산리 벽계수야' 는 앙코르를 청해 다시 듣고 싶은 곡.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백미 (白眉) 는 3막 지족선사의 파계 장면이다.

바라춤과 색다른 분위기의 음악과 함께 욕망과 싸우는 한 인간의 고뇌를 잘 표현했다.

또 화담과 지족선사를 한 무대에 올려 놓고 조명과 음악으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 발상은 높이 살만하다.

5막에 나오는 승려들의 남성합창으로 객석엔 숙연한 느낌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독창과 합창곡 위주의 연결로 마치 '황진이 추모 칸타타나 오라토리오' 를 무대화한 것 같았고 대부분의 아리아가 성악가의 기량을 뽐내기라도 하듯 최고음 (最高音) 일색으로 끝나버려 음악적으로 불안했다.

2막의 환상적인 호수 장면을 제외하면 부분 조명으로 평면적인 무대의 허점을 커버하려는 연출은 보는 재미를 반감시켰다.

황진이로 출연한 소프라노 김영미는 노련한 연기과 발성을 선보였고 소프라노 신지화는 윤기있는 목소리로 감동을 주었다.

자유분방한 개성과 자부심으로 짧은 인생을 불사르며 살아갔던 황진이의 성격을 색깔있는 목소리로 잘 표현해낸 소프라노 김유섬의 호소력 짙은 음색은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또 테너 임산 (화담) 과 바리톤 우주호 (벽계수).베이스 김명지 (지족선사) 는 성량이나 표현력 면에서 나무랄데 없었다.

'황진이' 공연은 19일까지 계속된다. 02 - 587 - 1950.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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