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20년만에 딸 만난 가출노인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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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2일 오후 8시30분쯤 서울은평구구산동의 한 허름한 판잣집. 늙고 병든 아버지 張모 (72) 씨와 막내딸 (34) 이 20년만에 상봉했다.

張씨는 지난 79년 아내와 네 딸을 버리고 집을 나와 전국의 공사판을 떠돌다 몇년 전부터 결핵을 앓고 혼자 어렵게 살아왔다.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가족들을 만나보고 싶었으나 자신이 가족들에게 저지른 잘못 때문에 선뜻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이웃 주민이 지난 2일 동네 파출소를 찾아 그의 사연을 알리고 가족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은평경찰서 역촌2파출소 남신웅 (南信雄.27) 경장은 하루종일 컴퓨터에 매달려 막내 딸을 찾아낸 뒤 이날 저녁 부녀 상봉의 자리를 마련해줬다.

"왜 저희들을 버리셨습니까. " 막내딸은 아버지에게 그동안 가족들이 겪은 고생담을 털어놓으면서 울먹였고 가만히 듣고 있던 張씨는 끝내 통곡하고 말았다.

張씨가 집을 떠난 뒤 아내와 네 딸은 끼니를 떼우기 위해 행상을 하며 모진 생활을 해왔다.

둘째딸은 질환을 앓다가 가출해 행방이 묘연한 상태고 아내는 5년전 생활고를 비관한 나머지 자살했다.

그래도 막내딸은 파출부를 하면서 독학으로 전문대를 나와 이제는 어엿한 가정주부가 됐으며 병을 앓는 언니까지 모시고 있다는 얘기에 張씨는 목이 메었다.

아버지를 잊지 못해 고향에 있는 어머니 묘소 옆에 1천만원을 들여 아버지 묏자리까지 마련해 놓았다는 막내딸의 마음 씀씀이에 張씨는 참회의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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