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남편 시신 기증 사연에 울어버린 의대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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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나의 남편이 오늘 내 품에 안겨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남편은 '비록 나는 암에 정복당했지만 의대생들이 내 몸을 가지고 공부해 암을 정복할 수 있도록 해달라' 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

31일 오전 서울서초구반포동 가톨릭대 의대 본관 3층 인체해부학 실습실. 해부용 시신들을 위해 매 학기초에 올리는 위령미사 시간. 정동훈 (鄭東勳.34.신부) 교목실장이 위암으로 3년간 투병 끝에 숨진 한규동 (韓奎東.52) 씨의 부인 박정순 (朴正順.44) 씨가 보낸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아들과 딸은 '우리도 그렇게 할 용기가 있다. 그러나 아버지만은 절대 안된다' 고 애절히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 감정에 얽매이지 말라' 고 했습니다. 그이의 뜻에 따라 시신을 기증합니다. "

첫 해부실습을 기다리던 의대 본과 1학년 1백20여명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더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김태정 (金泰政.28) 학생은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슬픔 속에서 고인을 장지로 보내지 못하고 생판 모르는 의대생들의 칼날 앞으로 보낸 가족들을 생각하게 됐다" 면서 "그들이 감내한 고통의 심정을 모르고 별 생각없이 실습에 임하려던 나 자신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고 말했다.

이날 첫 실습을 끝낸 학생들은 앞으로 시신 하나에도 고귀하고 깊은 뜻이 숨어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의사가 아니라 오직 환자를 내 가족처럼 돌보는 히포크라테스가 되자는 결의도 다졌다.

정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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