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칼럼

괴짜 과학자가 발견한 DNA지문의 혁명(2)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DNA지문을 발견한 제프리 박사는 그 공로로 작년 4월 세계 최고의 기술상이라고 할 수 있는 2008년도 밀레니엄 기술상(Millennium Technology Prize)을 받았다. 이론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는 노벨상과 거리는 멀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어떤 노벨상 수상자에 못지 않다.

괴짜 인생 속에서 혁명을 일으킨 과학자

괴짜 과학자 알렉 제프리 박사는 DNA지문 발견으로 과학수사의 새로운 장을 마련했다.

그의 업적은 다음과 같다. “범죄 용의자 신원확인과 친자 확인, 그리고 입국 심사 때 논란을 해결하는데 이용되는 DNA 지문을 발명했다. 첨단 유전학의 다른 어떤 기술도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삶에 이와 같은 근원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위대한 발견은 순간적으로, 그것도 우연히 이루어진다. 그러나 발견에 이르기까지에는 엄청난 땀과 열정이 필요하다. 제프레이 박사의 DNA지문 기술도 우연히 발견됐다. 그러나 이는 호기심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살아 온 괴짜 인생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제프리 박사는 DNA지문 기술 발견으로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또한 각종 범죄와 관련된 유전자 지문 연구의 고문으로 일하면서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다. 그가 낸 특허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아 있는 과학자다.

그렇다면 DNA지문 기술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해서 범인을 잡고 친자확인에 사용되는 것일까? 또한 고대미스터리를 푸는데도 이용되는 것일까? 이해하기 쉽게 DNA지문이 해결한 최초의 사건을 살펴보자.

연쇄 강간 살인 혐의자에게 처음 적용

1983년 11월 23일 영국 나보르의 작은 마을. 당시 15살인 여중학생 린다 만(Lynda Mann) 양이 블랙 패드라는 한적하고 조그마한 들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이 학생은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됐다. 그리고 심하게 성폭행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범인이 현장에 남긴 유일한 단서는 여학생의 몸 속에 남긴 정액이 전부였다. 수사팀은 정액분석을 통해 범인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걸 알아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고 수사의 진전도 없었다.

다시 3년이 지난 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역시 나이가 같은 15세의 여중생 돈 애쉬워드가 성폭행 뒤 살해된 채 발견됐다. 앞서 살해된 린다의 시신이 발견된 지점에서부터 불과 1마일 정도 떨어진 조그마한 오솔길에서였다.

여기에서도 범인의 정액이 검출됐다. 수사팀은 이 정액을 과학수사연구소에 보냈다. 그리고 범인의 혈액형이 린다 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혐의자의 혈액형과 꼭 같은 A형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사팀은 이를 통해 두 사건이 한 사람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수사팀은 유력한 용의자로 직업이 없으며, 한때 성추행 혐의로 철창을 종종 드나들었고 마을에서도 행실이 좋지 않기로 평판이 난 불량 청년 리차드 버클랜드를 처음부터 지목해 수사를 벌였다. 그는 또 혈액형이 A형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검거한 용의자 버클랜드는 린다 만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자백했지만 돈 애스워드의 강간살인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다시 말해서 린다 만을 강간한 후 죽였다는 사실은 자백했지만 아무리 다그쳤지만 애스워스와는 전혀 면식도 없고 결코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DNA지문의 진가는 범죄에서 발휘돼

DNA지문 감식은 이제 범죄수사에서 필수 요소가 돼버렸다.

사실 범행 대상이 같은 10대 청소년이라는 것. 그리고 같은 지역, 그리고 강간 후 살인이라는 범행수법이 비슷하다는 것뿐 입증할 증거가 전혀 없었다. 또 사건 당시 용의자의 알리바이도 뚜렷했다.

또 이상한 것은 린다 만을 죽였다고 자백한 내용에 대해서도 의심이 가는 대목이 많았다. 린다 만을 성폭행 후 죽였다고 자백은 했지만 범행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경찰이 결국 찾아간 곳이 바로 유전학 교수인 알렉 제프리가 근무하고 있던 레스터 대학이다. 경찰은 희생자에게 묻은 혈흔을 비롯해 몸 속에 남아 있던 남자의 정액을 검사해 달라고 제프리 박사에게 의뢰했다.

사실 제프리 박사는 유전자 지문기술을 개발했지만 한 번도 범죄 수사에 써본 적이 없었다.
제프리 박사는 버클랜드를 만나 혈액을 채취했다. 그리고는 그가 개발한 기술에 응용시켰다. 1차, 2차 사건의 용의자의 정액은 확보된 상태다. 정액에서도, 혈액에서도 DNA지문을 검출할 수 있다.

문제는 버클랜드의 혈액과 용의자의 정액에서 나온 DNA지문이 같거나 같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다. 만약 같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사건은 싱겁게 끝나버린다.

누명 쓴 사람에게 DNA는 구세주

그러나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DNA지문 비교결과 두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이며 경찰이 지목한 용의자 버클랜드는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시 말해서 용의자의 DNA지문과 두 명의 희생자의 몸 속에서 발견된 정액의 DNA지문과는 전혀 달랐다. 용의자는 경찰이 하도 다그쳐서 강제로 자백을 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버클랜드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수사팀에게 정말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런 죄도 없이 강간살인 혐의로 몰려 죽을 위기에까지 몰렸다가 풀려났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까지 갔던 버클랜드는 그야말로 DNA 테스트가 구세주였다.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경찰은 여론의 빗발치는 항의를 감수해야만 했다. 특히 말 많고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신문과 방송은 좋은 기회를 만났다. 언론은 시리즈에 기획기사까지 동원하면서 이제까지의 경찰의 수사시스템을 호되게 몰아 부쳤다.

아마 알렉 제프리(Alec Jeffrey) 박사라는 똘똘한 유전학자가 없었다면 버클랜드는 철창 속에서 살고 있거나 아니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결국 화가 치밀어 오른 영국 경찰은 사건이 일어난 나보르 마을에 거주하는 모든 남자들을 대상으로 혈액검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채취한 혈액을 통해 DNA테스트를 하면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대신 피검사를 한 남자에 대한 제보로 범인 잡아

경찰은 나보르에 사는 5천명이 넘는 남자들의 이동을 막았다. 다시 말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마을 전체를 포위해 검문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모두 혈액샘플 채취를 실시했다. 그런데 DNA분석을 해봤지만 동일한 DNA지문이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애가 타기 시작했다. 여기에서조차 범인을 잡는 데 실패하면 영국 경찰의 자존심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도 한 남자가 혈액 채취에 응하지 않고 빠져나가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영국의 연쇄 강간 살인범 콜린 피츠포크. 범죄역사상 DNA 지문감식으로 붙잡힌 케이스 1호다.

그의 이름은 콜린 피츠포크. DNA 분석으로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 오자 이 남자는 한 친구에게 술도 사주고 용돈도 몇 푼 주면서 대신 피검사에 응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조작한 여권을 그에게 주었다. 용케도 피츠포크는 경찰의 DNA지문분석 수사망에서 빠져 나오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런데 대리로 피검사를 받은 피츠포크의 친구는 천성적으로 비밀이 있으면 감춰둔 채 참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내뱉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함부로 말하길 좋아하는 떠버리였다.

경찰의 혈액샘플이 연쇄강간살인범을 색출하기 위한 거라는 걸 알게 된 이 떠버리는 “친구의 부탁으로 대신 혈액샘플에 응했다”며 영웅이나 된 것처럼 식당이나 술집을 전전하면서 용감하게 자랑하면서 다니곤 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 떠버리 친구의 말을 별로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수상하게 생각한 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다. 피츠포크도 경범죄로 종종 경찰을 드나들었고 행실이 좋지 않은 남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피츠포크를 당장 붙잡고는 피를 뽑아 DNA검사를 실시했다. 연쇄강간살인 혐의자의 DNA 지문과 일치했다. 결국 사건의 전말을 모두 경찰에 털어 놓았다.

CSI가 등장한 것도 DNA지문에서

피츠포크는 범죄역사상 역사상 DNA테스트로 붙잡힌 케이스 1호미며 버크랜드는 DNA테스트로 풀려난 케이스 1호다. 이렇게 해서 경찰을 괴롭혔던 이 사건은 DNA지문 분석으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알렉 제프리의 DNA지문이 진가를 발휘하면서 과학수사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사법기관의 범죄수사에 혁명을 일으켰다. 20년 징역을 살던 죄수가 무죄로 풀려 나오는가 하면 사형언도를 받은 사람이 석방 되기도 했다. CSI가 안방의 독무대가 되기 시작했다.

DNA지문이 수사에 도입되자 세계최대 범죄국가이자 가장 잔혹한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미국에서는 무려 150여명이 넘는 중대한 범죄자들이 무죄로 풀려났다. 대부분 강간과 살인에 연루된 사람들이다. (계속)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