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계좌추적 급증 이유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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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정부가 들어선 뒤 지난 한해 각 기관에 의한 금융기관의 계좌추적이 급증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범상히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바로 이는 계좌추적의 오.남용이 그동안의 많은 비판에도 여전히 온존하며, 과거정권 시절 이로 인해 큰 피해를 본 국민의 정부에서도 오히려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금융감독위원회 자료를 통해 공개한 계좌추적 급증실태는 국민들로서는 충격적이다.

당연히 국민들로 하여금 "개인의 금융자산을 추적해가며 밝힐 일이 왜 그렇게 많았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국가기관이 지난해 벌인 개인계좌 추적건수는 9만8천9백여건으로 46%가 늘어났다.

특히 법원의 영장없이 정부기관이 임의로 조사한 것은 8만5천여건으로 40%가 증가해 계좌추적권 오.남용의 혐의를 짙게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에 대해 공방이 한창이다.

야당측이 총풍.세풍 등 대선 후유증과 정치인의 사정과 무관치 않다며 공세로 나오자 여당은 전면부인하는 입장이다.

사실 이런 공방이 아니더라도 지난해는 금융.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의 실태파악과 책임을 묻는 일 등 계좌추적의 필요성은 적지 않았다.

적법한 계좌추적에 이의가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국회 경제청문회에서 이른바 '사직동팀' 의 영장없는 계좌추적이 문제가 된 게 엊그제인데다 정치사찰이나 금융 뒷조사의 유혹으로부터 초연하기 어려운 권력의 속성을 생각할 때 불법은 아니더라도 합법이라는 테두리에서 과잉 계좌추적이 없어졌다고 믿기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금융거래에 대한 간섭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막연한 투서나 정보 또는 개연성만으로 개인의 금융거래를 들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금융거래는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에 속하며 금융관계법이나 예금비밀보장에 관한 법이 이를 보호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계좌추적은 금융기관에도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다.

업무 폭주는 물론 계좌추적을 당한 고객에게 통보임무도 떠맡아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란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은행들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고 관치금융이 더 힘들어지는 상황에서도 가능할 것인가 묻고 싶다.

이상적인 방안은 각종 부패와 비리예방 등을 위한 실질적 계좌추적은 가능하면서도 금융실명제의 비밀보장 취지를 해치지 않는 접점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올해는 공정거래위에까지 한시적이지만 계좌추적권을 부여함으로써 금융거래 비밀보장은 더 위축될 우려를 낳고 있다.

이 점과 관련해 정부는 계좌추적의 급증 이유와 향후 운용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또한 계좌추적권의 악용이나 불법사용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제도적 안전장치 강화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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