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비평] 日영화 '비밀의 화원'복사한 '산전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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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경쾌한 오락영화 '산전수전' 이 일본영화 '비밀의 화원' 을 그대로 흉내낸 복사품이라는 사실은 한국영화의 창의성과 자생력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실망스럽다.

소설이나 만화 또는 실제사건 등을 영화로 만드는 경우가 흔하고 유명 영화장면들만을 따로 짜깁기하는 패러디 영화가 나오는 판에 특정영화를 원작으로 삼아 새로 만드는 것은 권할 일은 아니더라도 굳이 비난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산전수전' 이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소재나 줄거리를 빌려다 다시 만드는 리메이크의 한계를 넘어 세트나 의상.화면구성.진행 등 세부요소들까지 그대로 베끼는 한국영화의 부끄러운 역사를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판권계약을 맺었다는 점에서 불법 표절의 경우와는 구분되지만 한국영화계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은 피하지 못한다.

어쩌다 생긴 경우가 아니라 영화나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만연한 표절이나 모방, 베끼기 관행이 얼마나 질기게 남아 있는가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다.

영화의 자생력과 경쟁력은 새로운 것, 나만의 것을 찾아내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쌓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장비나 자본, 기술 같은 요소들조차 철저한 직업정신이 뒷받침돼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외국영화의 무분별한 흉내내기와 베끼기가 경쟁하듯 벌어졌던 상황에서 건강한 직업정신이 자리잡기란 어렵고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인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영화의 오랜 부진과 불안정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교류와 경쟁의 폭과 속도가 급속히 확산되고, 독자적 자생력만이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자존심이 담긴 확고한 직업정신이다.

리메이크를 하더라도 최소한 현대화 또는 현지화를 통해 원작과 다른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와 결과가 있어야 한다.

모방과 베끼기를 손쉬운 전략으로 삼거나 내 돈 들여 내가 만들겠다는데 어떤 식으로 하든 무슨 상관이냐며 우긴다면 한국영화의 미래는 없다.

애써 스스로를 자해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결국 상처받는 것은 한국영화 그 자체다. 그렇게 만든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한다고 해도 당혹스럽고, 실패한다면 그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영화를 관객들이 속없이 좋아한다면 영화인들의 직업의식이나 관객들의 수준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자조가 나올 수밖에 없고, 실패한다면 지금처럼 한편의 영화가 아쉬운 가운데 가늘게 회생기미를 보이고 있는 영화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산전수전' 은 우리 영화가 해서는 안될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교재인 셈이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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