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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쓴소리 할 수 있는 총리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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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어제 지명한 이명박 정부의 2기 내각 구성은 일단 평가할 만하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이 표방한 중도실용 노선에 상당히 가까운 진용을 포진했다. 이 대통령은 4월 재·보선에서 참패한 뒤 ‘근원적 처방’을 강조했고, 중도실용 노선을 표방했다. 이번 인선은 그것이 정치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발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역 안배도 적절해 화합을 지향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원활한 당정 소통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그동안 당과 정부가 한 가지 정책을 놓고 다른 목소리를 내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당정 분리라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되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집권당 소속 의원이라고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행정부의 거수기 역할만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을 당선시킨 집권당이 국정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한나라당에서 현역 의원 3명이 입각했다. 전문가 몫으로 기용한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있었지만 사실상 이 정부로서는 새로운 시도인 셈이다. 더군다나 과거 정무장관의 역할을 할 특임장관까지 신설해 현역 의원을 임명한 만큼 활발하게 당정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특히 야당과도 충분한 대화와 조율을 해 극한투쟁으로만 치닫던 야당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아쉬운 것은 개각을 4개월이나 끌어온 점이다. 한승수 총리는 수개월간 교체가 기정사실이 된 채 국정을 운영해왔다. 상당수 장관이 언제 개각이 있을지, 자신이 대상인지 아닌지 모르는 불안한 처지에서 일을 했다. 이것은 물러나는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거니와 국정에 차질을 초래할 소지도 있다. 인선에 고심한 결과이겠지만 이런 일이 반복돼선 곤란하다.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역대 총리를 봐도 외부 행사에나 참석하는 얼굴형에서부터 정권의 제2인자로 실질적으로 국정을 장악한 실세형 총리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이 대통령이 국정의 방향을 잡아 고심 끝에 인선을 했다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총리와 장관에게 충분한 권한을 위임해주기 바란다.

정운찬 총리 내정자는 지난달 본지 기자에게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사람이 너무 없다. 내가 총리가 되면 직접 직언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초심을 잊지 말고 적극적으로 할 말을 하는 총리가 되어 주기 바란다.

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정 내정자가 언급해온 내용을 보면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눈에 띈다. 4대 강 정비사업, 경제 기조 등에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자칫 정부 내 정책 불협화음이나 국정 혼선으로 번지지는 않도록 충분한 토론과 조율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본다.

또 한 가지 걱정은 정 총리 내정자가 지명되자마자 ‘주자형 총리’라는 말이 나온다는 점이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기 위해 경력을 쌓아준다는 뜻이다. 국무총리라는 자리가 정치적 경력이나 쌓는 발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총리 이후의 행보를 생각하다가는 어려운 일에 몸을 사리고, 인기 위주의 생색내기 정책에 치우칠 수 있다. 또 필요 이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경쟁자들을 자극해 국정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총리를 마지막 자리로 생각하고 전력을 다할 때 국민도 평가해줄 것이다. 정운찬 내각의 성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