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해외출판] 추락하는 독일경제… 출구는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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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land; Der Abstieg
eines Superstars
(독일; 어느 수퍼스타의 몰락)
Gabor Steingart, Piper, 13 유로

지난해 한국 언론에서는 독일 경제가 동네북이 됐다. 한때 라인강의 기적을 일궜던 수퍼스타 독일이 탈진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독일은 사회복지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지만 허구한날 휴가타령을 하다보니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은 선진국 중 가장 짧다.

정부와 경영진이 막강한 노조의 눈치를 살피는 탓에 노동시장은 한껏 경직돼 있고 세금은 재정적자를 메우느라 가혹하리 만큼 높다. 게다가 걸핏하면 시장에 입김을 행사하는 정부의 간섭은 지나치다. “독일 경제가 이처럼 중병을 앓고 있으니 그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 당시 한국 언론들의 외침이었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베를린 사무소장 가보르 슈타인가르트(42) 기자가 쓴 『Deuts chland; Der Abstieg eines Superstars』도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외국인의 시각이 아니라 당사자의 입장에서 독일의 치부를 과감하게 들춰낸 분석 보고서여서 공감할 대목이 많다.

“독일은 몰락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서서를 받던 경제대국이 이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리더그룹에서 빠지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그 과실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독일식 경제모델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유럽의 환자’로 전락한 독일의 현실을 인정사정 없이 깎아내리고 있다. 그는 독일 경제의 성공 스토리는 오래전에 끝났다고 못을 박았다. 한때 독일은 경제모범생으로 다른 나라들이 흉내낼 만큼 부러움을 샀지만 지금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년간 실질 경제성장률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실업자 수는 450만명으로 불어났다. 정부 보조금에 목을 매고 살아가는 극빈자 수만도 270만명에 이를 만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상황을 맞고 있다고 그는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독일 경제가 이처럼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원인을 5개 장에 걸쳐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다. 요약하면 국가가 사회복지를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니 재정이 거덜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독일의 정치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비효율적이어서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내릴 수 없는 상황이고, 그러다보니 위기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밖에 참여와 협의를 중시하는 독일의 독특한 경제운영 제도인 ‘사회적 시장경제’시스템이 신자유주의시대를 맞아 한계에 부닥쳤다는 것이다.

슈타인가르트 기자는 복지국가 독일의 흥망성쇠를 분석하면서 그 탓을 정치 지도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헬무트 콜 전 총리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현 총리나 인물만 바뀌었지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어느 정권도 만성 실업과 국가 부채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독일의 문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풀어가면서 자칫 따분해지기 쉬운 주제를 재미있는 읽을 거리로 만들어 내는 저자의 글쓰기가 독특하다. 예를 들면 독일의 상·하 양원 시스템은 히틀러 정권 때처럼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과 독일 정치인들이 합의해 미국의 예를 따랐는데 그것이 오히려 현재 독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식이다. 하원과 상원으로 의사결정 과정이 이분화돼 있어 위기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풀이다. 저자는 독일이 경제·사회적인 발전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실패했는가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일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추구해야 할 대안 세가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가 정부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연방 상원을 폐지하는 정치 시스템의 개혁이다. 둘째는 사회복지 시스템을 수술해 연금 및 건강, 노년보험과 관련한 과도한 사회분담금을 줄이는 일이, 셋째로는 복잡한 세제의 단순화가 꼽혔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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