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 들인 서울시 새주소부여사업 구마다 달라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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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새주소 부여사업이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1910년부터 사용돼 온 현행 주소체계는 토지 지번을 중심으로 한 것이라 불편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는 서울시의 경우 기본지침 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사업부터 벌여 예산낭비와 혼란이 필연적이다.

서울시는 시범 사업을 끝낸 강남구의 새주소가 주민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가운데 나머지 자치구도 본격 준비에 들어갔다.

서울시 새주소 부여 사업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새주소 부여사업' 이 삐걱거리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주관하는 이 사업은 동 (洞) 과 토지 지번으로 이뤄진 현행 주소를 2004년까지 도로이름과 건물번호를 결합한 서구형 주소체계로 바꾸는 것. 예컨대 중앙일보의 주소 '중구 순화동 7번지' 가 '중구 중앙일보길 1번' 과 같이 바뀔 수 있다.

가장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는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4월 강남구가 시범사업을 끝낸 데 이어 지난해 8월부터는 각 자치구별로 사업이 추진돼 올 연말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도로표지판 제작 등 순수 사업비만 최소 2백억원이 들어간다.

그러나 서울시는 도로명을 어떤 방식에 따라 붙일 것인지 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또 행정자치부 등 관련 부처.서울시 각 부서별로도 입장이 제각각이어서 졸속 진행에 대한 걱정들이 많다.

◇ 원칙이 없다 = 서울시가 새주소 사업의 가장 핵심인 도로이름 부여 방식을 아직 결정하지 못해 이미 해놓은 작업의 상당 부분을 뜯어고쳐야할 판이다.

당초 시는 시범 작업을 마친 강남구처럼 모든 도로에 고유 이름을 부여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도로명이 너무 많아져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이 빗발치자 방향을 선회, '블록화에 의한 도로명 부여' 라는 새 지침을 만들었다.

일정 구역을 한데 묶은 블록에 하나의 이름을 부여한 뒤 광화문 1길.2길 식의 일련번호를 붙이겠다는 것. 시는 "블록화 방식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고 밝히지만 어떤 방식으로 결정이 나든 낭비가 불가피하다.

서초.강동.서대문구 등은 강남구 방식으로, 관악구는 블록화 방식으로 절반 이상의 작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명명기준에 대해서는 획일적으로 특정 방식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자치구별로 특성에 따라 신축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일부 지적도 있다.

또한 오랫동안 혼란을 가중시켜왔던 법정동과 행정동의 불일치는 그냥 남아있게돼 상당수의 주민들이 3개의 주소를 병행사용할 수 밖에 없게됐다.

◇ 혼선, 낭비 필연적 = 새주소의 조기 정착을 위해서는 주민등록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행정자치부는 개정 시기조차 정하지 못한채 "3~4년간 현행 주소와 병용한다" 는 원칙만을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여당은 올 하반기부터 4백20억원의 예산을 들여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을 도입할 예정이다.

그러나 새주소 사용이 공식화 되면 플라스틱 주민증도 다시 만들어야 할 판이다.

새주소 도입 취지가 우편배달.택배 등 물류 선진화를 위한 것이지만 정작 우편사무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는 무관심하다.

정통부측은 "우편을 동 (洞) 별로 분류하는 현행 체계에서 동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새주소는 무용지물" 이라고 밝혔다.

도로명 부여의 기초가 되는 도로축의 정비도 혼선을 빚고 있다.

서초~강남~송파~강동구를 관통하는 도로의 경우 서초로 (서초구) , 테헤란 (강남구) , 올림픽로 (송파구) 등 명칭이 7가지나 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서울시 도시계획과는 시내 도로를 1백48개축으로 분류해 관리하겠다며 이미 건설교통부로부터 승인을 받아놓았다.

시 교통기획과는 이와 별도로 18개 도로축을 설정한뒤 이를 토대로 2001년까지 도로안내 표지판을 전면 정비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시연대 최정환 사무국장은 "서울시가 지침 마련.도로체계 정비를 소홀히 해 일을 그르치고 있다" 며 "이처럼 졸속 추진했다가는 가뜩이나 엉망인 주소체계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을 것" 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근로 사업자 활용지침과 맞물려 시행시기가 예정보다 앞당겨졌다" 며 "문제점을 단계적으로 보완해나갈 계획" 이라고 밝혔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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