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흥행신기록 영화'쉬리' 강제규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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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금 이 땅의 대중예술인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가 있다.

자신의 두번째 작품으로 한국영화 흥행시장을 평정한 '쉬리' 의 강제규 (姜帝圭.37) 감독이다.

'쉬리' 는 이제 누구나 안보면 안될 것같은 '신드롬' 이 돼버렸고, 젊은층 사이에서 안보면 시쳇말로 '왕따' 당할 지 모른다는 '집단 히스테리'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알려진대로 지난 6일 '쉬리' 는 지난 6년간 난공불락으로 여겨져 왔던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서울관객 1백3만명) 를 깨고 한국영화 흥행사의 신기록을 작성했다.

서울 1백8만명.전국 2백50만명. 이 신기록은 1919년 최초의 국산영화로 이 땅에 나온 '의리적 구투 (義理的 仇鬪)' 이후 한국영화 사상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사건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쉬리' 는 할리우드 아류의 범작일 뿐 오히려 우리 영화의 다양성을 해칠 독소도 있다는 주장이 만만찮다.

과연 그럴까. 姜감독으로부터 그 심정을 들어본다.

- 이런 성공을 예상했나. 지금의 솔직한 소감을 듣고 싶다.

"그것은 쾌감이다. 당초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물론 3년전 '은행나무 침대' 때도 그랬다. '지나치게 판타지성' 이라느니, '컴퓨터그래픽 (CG) 이 터무니 없다' 는 등의 이유를 댔다. '과욕을 부리는 것 아니냐' 는 충고도 있었다. '할리우드를 따라갈 만한 하드액션이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 관객이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재미' 는 언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

- 그렇게 맞아 떨어진 것을 축하한다. 소위 블록버스터라는 대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극복 방법은 무엇인가.

"내가 추구했던 '첩보액션' 이란 대중지향적 소재는 돈이 문제해결의 열쇠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쉬리' 에 투여한 24억원이란 돈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기술.자본력이 다 불비하다. 그러나 우리 관객은 할리우드식의 그런 영화를 원한다. '할리우드 정도는 돼야지' 하는 게 우리 관객의 잣대다. 나는 '방법적 우회' 를 택했다.

자본.기술력이 안되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다. "

- 그 '우리의 정서' 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 여느 감독들로 흔히 '정서' 운운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찾는 것이다. 소재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보다 '재미있는 영화' 로 만들기 위해서는 탄탄한 시나리오가 전제돼야 한다. 흔히 '할리우드식' 이라는 액션.첩보.멜로 등등은 이런 내러티브 위에 뿌려지는 양념과 같은 것이다. "

- 그래서 '쉬리' 의 '양념' 이 그토록 다채로웠나. 장르로 열거하자면 '액션.첩보.서스펜스.멜로' 라고 할 만큼 뒤범벅이다.

"기술과 자본이 있으면 액션이면 액션, 멜로면 멜로 등의 단선 (單線) 구조로도 얼마든지 대작을 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우리의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여러가지 섞은 '복합장르영화' 를 만들어 관객들의 기대치를 적절히 분산시킨 것이다. "

- '쉬리' 의 만족도는.

"90% 만족한다. 물론 앞에서 말한 우리의 한국적 현실의 바탕위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

- 감독으로서 흥행에 대한 관점은.

"나는 원래 대중지향의 감독이다. 그러다보니 언제나 내 귀와 눈은 대중속으로 열려있다. 다시말해 나는 '나 (我)' 를 버렸다는 얘기다. 감독이 개인을 찾다보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나와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 것. 그것이 내 관심의 핵이다. 감독으로서의 선명성 (鮮明性) 이 필요한 시점이다. "

- 그 '선명성' 이란 게 어떤 의미인가.

"내 경우 지금은 대중성과 예술성의 사이에서 고민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

- '지금' 으로 한정했는데, 그럼 언젠가는 자신을 버리고 예술성을 찾는 감독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

"그럴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영화산업 기반이 튼튼해지는 시점이 될 것이다. 지금은 할리우드의 '싹쓸이' 가 극에 달한 시기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산업기반을 키우지 않고는 예술영화의 발전토양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나는 대중지향의 영화를 통해 그 기반을 넓히고 튼튼히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그 기반이 섰다고 판단되면 내 생각도 변할 수 있다. 그런 기반이 안 선다면 나는 영원히 반 (反) 예술영화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

- 구름잡는 얘기처럼 들릴 수 있으나 홍콩감독들처럼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싶은 생각도 있을 텐데. 세계시장을 향한 복안같은 것이 있나.

"나는 예전부터 3단계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었다. 작품으로 치면 '은행나무 침대' 가 1단계였다. '강제규' 란 이름을 내수시장에서 인지시키는 단계다.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한다. 2단계의 '쉬리' 는 국내뿐만 아니라 동남아.유럽무대로 진출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종영이 되면 본격적으로 해외판매망을 가동할 것이다. 이 단계가 끝나면 나만의 영화적 질감과 성향을 드러내는 시기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거쳐야 할리우드의 진출이 가능할 것이다. "

- 다시 '쉬리' 로 돌아가 보자. 액션과 멜로를 스토리라인을 이끄는 두 축으로 볼 때 액션만큼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멜로 부분의 복선 (伏線) 이 초반엔 매우 취약하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점에 대해 두고두고 연구해볼 참이다. "

- '쉬리' 의 완성도를 솔직히 자평해 보라. 범작이라는 사람도 많다.

"러닝타임에 대한 판단착오가 가장 아쉽다. 1시간50분을 예상하고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2시간20분짜리가 됐다. '올콘티' 를 못하고 찍은 게 문제였다.

재편집.삭제를 거치다보니 '상황의 연결고리' 가 빗나가기 일쑤였다.

허술한 장면전환 등은 이 과정에서 비롯됐다. 결국 '감정의 연결고리' 를 택했다. 영화적 허구와 영화적 시간이라는 것도 있다. "

- 시대착오적 냉전 이데올로기를 상품화했다는데.

"화해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냉전 이데올로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만은 아주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싶어 많은 자료를 검토했고, 도움받을 만한 사람도 많이 만났다. 누구의 편에도 서지않겠다는 것이 영화를 만들면서 계속 품었던 원칙이다. "

- '쉬리' 가 과도하게 할리우드를 흉내낸 '유사 할리우드영화' 일 뿐이라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엔터테인먼트가 할리우드의 전유물이란 생각은 대단한 착각이다. 지금 한국영화엔 무엇보다도 다양성이 필요하다. 만약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의 단골메뉴인 UFO나 우주선을 다룬 영화를 우리가 만들었다고 해서 그게 할리우드의 야류로 봐야 하나.그것은 대단한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대만영화 '음식남녀' 처럼 음식을 소재로 했다고 해서 지금 만들고 있는 '북경반점' 이나 '신장개업' 을 대만영화의 아류로 본다면 우스운 것 아닌가. 아무리 할리우드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

- '쉬리' 로 얼마쯤 벌게 되나.

"우선 삼성과 강제규 필름이 6:4로 수익을 배분하기로 하고 만약 흥행이 잘돼 서울관객 기준 80만명이 넘으면 5:5로 나누기로 계약했다. 벌써 80만이 넘었으니 5:5 원칙이 적용된다. 서울 1백50만명, 지방 3백만명으로 잡으면 25억원 정도가 내몫이다. "

- 이젠 좀 쉬어야 하지 않나.

"요즘 아내 (탤런트 박성미) 의 성화가 심해졌다. 가족에게 봉사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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