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젠 정국 정상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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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제 있은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 회견을 계기로 여야 총재회담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국 정상화의 싹이 조금씩 보이는 듯 싶다.

여야는 모처럼의 가능성을 잘 살려 빨리 총재회담을 성사시키고 이어 정국정상화→여야관계 정립→정치개혁과 국정의 동반이란 수순으로 정치수준을 한 단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여러 1주년행사와 李총재 회견을 통해 여야갈등의 본질이 다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여는 야를 "발목 잡는 비도덕 세력" 이라 몰아치고, 야는 "지난 1년 민주주의는 심각히 손상되고 후퇴했다" 고 규탄했다.

빅딜.구조조정.경제성과.지역감정.야당 장외집회 등에 대해서도 여야 인식의 격차는 엄청나게 크다.

하지만 이런 대치 속에서도 여야는 서로 접점의 여지를 보였다.

金대통령은 야당에 대해 국정동반자론을 거듭 천명했다.

李총재는 회견에서 金대통령의 위기극복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위로했다.

여야는 이처럼 격렬한 대치 속에서도 동반자라는 운명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출구 (出口) 를 함께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야 지도자가 늦었지만 서로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여든 야든 앞으로 얼마나 진지하고 효과적으로 갈등의 해법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나가느냐에 있다.

총재회담이 열려도 야당의 장외집회나 서상목 (徐相穆) 의원처리 같은 문제를 놓고 승강이만 벌인다면 어렵게 마련된 좋은 계기도 무위로 끝나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야는 앞으로 총재회담이나 당직자대화.국회토론 등을 통해 대국적인 견지에서 갈등을 풀어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여야는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는 문제는 과감히 뛰어넘어 정치개혁.구조조정.실업대책.민생문제 같은 데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제부터는 정책으로 당당한 경쟁을 하라는 것이다.

여야의 건전하고 당당한 대결이 이뤄지려면 여당은 독선을, 야당은 냉소 (冷笑) 를 버려야 한다.

金대통령과 여당은 李총재가 회견에서 제시한 법과 제도에 의한 국정운영, 국회를 통한 국정토론과 정책수립,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세 가지 고언 (苦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야당도 표를 위한 비판, 대안없는 공격을 엄정히 반성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빅딜정책을 비판하면서 후유증을 부추기고 지역감정을 선동한 적이 있다.

말로는 민생을 주창하면서 막상 의약분업 연기 같은 데선 여당보다 더 하지 않았는가.

정국 정상화의 길은 사실 평탄하지 않다.

여러 장애물이 있다.

예를 들어 이달 말의 두 지역 보궐선거를 놓고 중간평가니 하는 과장된 의미 부여로 여야가 사생결단식으로 부딪친다면 중요한 국정과제는 또 뒷전으로 밀릴 것이다.

어느 때보다 국민은 앞으로의 정국전개를 주시할 것이다.

여야는 그런 국민시선을 마땅히 느끼고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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