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일본총선 기획시론 ②

민주당은 일본을 얼마나 바꿀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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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일본 민주당은 일본 선거 역사상 최대 의석 수를 획득하며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지각변동’ ‘선거혁명’이라고 흥분한다. 1955년 이후의 총선거가 줄곧 자민당의 정권 유지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민주당이 압승하게 된 원인은 먼저 경제적 효율성만을 추구한 ‘고이즈미 개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들 수 있다. 시장원리주의 하에서 비정규직과 빈곤층은 양산되고, ‘격차사회’는 심화되었다. 자민당 정권하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온 부정부패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정치스타일도 국민의 불만을 샀다. 자민당 정치에서 ‘상수화’돼 온 금권형 스캔들은 일반 국민의 도덕적 기준으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최근 3년 동안 국민의 신임 없이 아베·후쿠다·아소로 이어진 총리 교대는 국민에게 정치적 무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관료가 정책 형성의 주도권을 쥐고, 자민당은 이에 편승하는 집권당의 무책임에도 비판이 컸다. 물론 민주당도 ‘생활정치’를 앞세워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들을 개발하여 표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자민당 지배로 인한 일본 정치의 장기 혼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국민의 욕구 앞에서 정책 제시는 2차적 중요성밖에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민주당의 승리는 스스로 유권자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결과라기보다 ‘자민당 심판’이라는 반사적 이익에 의존한 측면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자민당 정치 부정’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업고 집권한 민주당은 국정 운영에 있어 상당한 변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책 결정의 주도권이 관료에서 정치가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각각 국가비전을 형성하고 행정감독을 담당할 ‘국가전략국’과 ‘행정쇄신위원회’의 신설을 예정해 놓고 있다. 내각에는 100여 명의 국회의원이 투입돼 주요 포스트를 장악한다. 이러한 계획이 잘 진행되면 일본의 정책형성 스타일, 나아가 일본 정치 그 자체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대외관계도 적지 않은 변혁이 예측된다. 민주당은 같은 보수정당이면서도 자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 평화주의 노선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자민당 시대의 대미 일변도로부터 미국과 아시아를 함께 중시하는 포괄외교로의 방향 선회가 예상된다. 대등한 미·일동맹 관계와 국제 공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과거사 문제(야스쿠니 신사·종군위안부 등)에 대해서도 대체로 전향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므로, 한국과의 관계개선도 기대된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전의 제재와 압박만을 가하는 모습에서 일정 부분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하는 전략으로 약간 중심이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 정부의 의욕과는 달리 정책 추진에는 한계도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내에는 구사회당계(좌파)부터 구자민당계(우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념 집단들이 혼재하고 있다. 이 점은 당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강력한 이념투쟁의 발발 가능성을 예시한다. 민주당은 중의원에서는 절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참의원에선 과반수에 미달하고 있다. 원활한 정책 수행을 위해서는 사민당 및 국민신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는데, 이 점도 민주당의 독자적인 정책노선 수행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정권담당 경험이 없는 것도 신 정부 초반에는 혼란을 초래할 요인이 될 수 있다. ‘탈(脫)관료’를 추구하지만, 정치가들이 과연 그만한 능력이 있는가는 의문이다. 과도한 정치적 고려를 하다 보면 포퓰리즘적 정책이 증가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한번 바꿔보자’는 강한 바람에 얹혀 정권 장악에는 성공했지만, 진짜 시험대에 오른 것은 지금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하세헌 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