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의 글쓰기] '섬진강 이야기' 시인 김용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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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섬진강을 우리네 영원한 고향의 강으로 지키고 있는 시인 김용택은 요즘 산문에 골몰해 있다. 시인의 산문은 도시문명이 삶의 전부가 돼버린 현대인들의 가슴이 아릿하도록 고향의 향수를 그려낸다.

그 추억이 현재형이 되는 것은 시인이 나서 자란 섬진강가 진메마을 언저리를 오십 평생 떠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 90년대초까지도 십 리 떨어진 직장, 천담분교까지 (지금 시인은 전교생이 16명뿐인 전북 임실 마암분교 교사다) 풀꽃 내음 맡고 산딸기 따먹으면서 출퇴근한 사연은 차량 소음과 교통 정체에 시달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신선놀음처럼 들린다.

"고향으로, 농촌으로 돌아가잔 얘기가 아니에요. 귀향이야 요새도 있죠. 그 사람들 돌아와서 고향사람 똑바로 쳐다보들 못해요. 그 맴이 맵고 쓰린 것, 월매나 인간적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것, 다 알지요. " 지금 그의 산문쓰기를 부추기는 것은 한갓진 삶을 자랑하고픈 욕심이 아니라, 절박한 위기감이다.

학생이 없어 폐교위기에 처한 마암분교처럼 이 농촌공동체의 삶 역시 지금 기록으로 보존하지 않으면 곧 기억에서조차 사라지리란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산문엔 시적 영감 대신 인류학적 성격이 짙게 가미된다.

예컨대 고기잡이 얘기에만도 자가사리 낚싯대는 대나무와 삼줄로 만든다는 것, 통발을 만드는 재료로는 산죽과 다래나무가 으뜸이라는 것,가을 참게를 잡을 때와 겨울 피라미를 잡을 때 통발을 달리친다는 것 등이 사진까지 곁들여 꼼꼼히 기록된다.

가옥 구조.퇴비 만드는 법은 물론이고, 마을의 역대 이장.소고춤의 명수 같은 사람 얘기, 술취한 객기에 마을 입구 감나무를 불지른 청년들을 동네 어른들이 어떻게 꾸짖고 어떻게 용서했는가 역시 그같은 기록의 대상이다.

이렇게 써내려온 산문 작업은 최근 '섬진강 이야기 1.2' (열림원.각 7천원) 로 묶였다. 93년 나왔다 절판된 산문집 '섬진강을 따라 가며 보라' 에 실렸던 글을 손보고,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더했다.

시인은 이제 시간을 더 거슬러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산문으로 쓸 참이다.

진메마을처럼,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어 살아가는 농촌공동체의 삶이야말로 반인간적 양태를 띠는 지금의 문명이 한참을 에둘러서라도 다시 돌아가야할 곳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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