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檢亂' 마무리가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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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심재륜 (沈在淪) 파동과 검사 집단행동 등 이른바 '검란 (檢亂)' 은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이었는가.

우리나라 초유의 검사 항명.연판장 사건이 과연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마무리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관심을 모았던 '검찰 시녀론' 의 실체는 무엇이며 연판장에서 검사들 스스로 거론한 '정치 검사' 는 과연 몇 명이고 구체적으로 누구란 말인가.

합리 (合理) 를 가장 중시한다는 법률가 집단에서 조직 전체가 상처투성이가 돼 손가락질받는데도 책임지는 간부가 없고 빈 자리가 없어 인사를 못하고 미루기만 하는 것이 정상인가.

검찰은 범법자의 잘못을 따지고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것이 주임무다.

정상 (情狀) 을 보고 온정을 베풀기도 하고 중형에 처하는 것이 검찰이다.

이처럼 저울질이나 사리 판단에 밝아야 할 조직이 어째서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한 채 엉거주춤 눈치만 살피고 있는지 답답한 일이다.

이번 검찰 사태의 책임은 대전 법조비리 수사 관련자와 검사들의 집단행동 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직원들이 무더기 구속되는 등 파문의 본거지가 된 지역의 검찰 간부는 어떤 형태든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또 수사 결과.처리에 대해 한 식구인 검사들조차 수긍하지 못하고 들고 일어났다면 수사책임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검란의 주 원인은 법조비리 수사에 검찰 수뇌부가 이른바 '국민정서법' 을 지나치게 확대 적용한 것이라고 본다.

사태가 다급하다고 법 아닌 '여론' 을 처벌의 잣대로 삼아 법을 집행한 것이 잘못이란 뜻이다.

공소.징계시효가 모두 지나 '공소권 없음' 이 분명한데도 혐의사실을 부인하는 검사장을 대질까지 시킨 것은 직권남용이요, 검찰권 오용 (誤用) 의 본보기였다.

특히 현직 고검장의 징계사유로 청구된 사건 은폐 혐의가 법무부 징계위원회에서 무혐의 처리됐다는 것은 검찰 조사가 얼마나 문제가 많았나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또 '심재륜 죽이기' 를 위해 공소제기도 하기 전에 이종기 (李宗基) 변호사의 진술기록을 기자들에게 배포한 것은 법률가로서는 해서는 안될 범법 (犯法) 행위였다.

그리고 李변호사 사건 직후 대검 감찰부장부터 현지에 내려보낸 것도 문제였다.

감찰부는 검찰 직원들의 비리를 조사해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부서다.

부장검사 경력의 머리 좋은 李변호사가 감찰부장을 마주하는 순간 '검찰이 사건 초점을 수사가 아닌 감찰로 맞추는구나' 하며 검찰과 주고받을 것을 미리 계산하지는 않았을까. 이 때문에 李변호사가 형사처벌될만한 판.검사 혐의사실은 함구하고 미운 판.검사 망신주는 기회로 삼았을 수도 있고 수사 과정에서 음모론이 나돌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책임은 검찰 수뇌부 몫이다.

부하들은 퇴진을 요구하고 임명권자는 임기를 강조하며 흔들리지 말라고 독려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 (進退兩難) 이다.

그러나 임기제의 취지는 외압 (外壓) 방지가 아니던가.

책임질 사건이 검찰 내부에서 발생한 상황까지 임기제를 들먹이는 것이 적절할까. 또 항명으로 물러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지만 검사들이 집단 동조하고 대다수 국민이 뜻을 같이 한다면 이미 항명 차원은 넘은 것이 아닐까.

명예와 권위가 실추된 지휘관이 국가 사정 (司正) 을 이끈다는 것은 국가나 개인 어느쪽에도 도움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증거를 찾지 못한 채 여론몰이식 법조계 비판으로 일관한 언론도 책임을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

李변호사 수임 장부까지 입수해 놓고도 잘못 처리된 구체적 사례는 단 한건도 밝혀내지 못했다.

李변호사가 지역 형사사건을 싹쓸이하고 그의 수임건수가 전국 5위라는 등의 수치가 어떻게 비리의 객관적 증거가 될 수 있는가.

양형 (量刑) 이나 구속 기준이 현저하게 불공정하게 처리된 사건은 전혀 찾아내지 못한 채 한달 가까이 전관예우니 떡값.향응 등만을 들먹인 것은 무책임 언론의 한 단면이었다.

벌써 판.검사들 사이에서는 '언론 손보기' 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믿고 싶지 않지만 검사실 컴퓨터 자료를 복사해낸 출입기자에게 며칠전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의 '중형 (重刑)' 을 선고한 것이 신호탄이란 말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번 사태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검찰이나 법원 모두 정치 판.검사 축출 등 개혁인사를 통해 하루 빨리 '권력 시녀론' 에서 벗어나고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는 것이 지금의 상처가 도지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권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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