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학의 지성 고작 이 수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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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려대 일부 학생이 그제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명예 박사 학위 수여식을 몸싸움으로 막아 파행을 빚게 했다. 아직까지도 우리 대학가에 남아 있는 반지성과 폭력성의 일단이 그대로 드러났다. 언제까지 우리 대학이 이 같은 소수 운동권에 의해 휘둘리고, 또 다수 학생이 그 피해를 봐야 하는지 실망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반자본.반전'을 표방한 연합단체 학생 100여 명의 집단시위는 시대착오적일 뿐더러 방법도 잘못됐다. 학생들은 '노동운동 탄압하는 삼성 회장 학위 수여 반대'등의 구호를 외치는 한편, 삼성 측이 고려대에 400억원을 기부한 것을 놓고 대학 측에 '학위 장사'를 했다고 비난했다. 기업인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이렇게 왜곡돼 있으니 대학교육의 경쟁력이 생기겠는가. 구구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삼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이고, 그 기업을 이끌어 온 이 회장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공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5년 전 서울대가 이 회장에게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기업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고 욕하면서 이번 경우처럼 기부를 하는 기업인도 매도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 분별없는 행동이다.

대학 측은 이 회장이 학위를 안 받겠다고 고사했음에도 억지로 모셨다고 한다. 학생들이 학교 행정에 대해 반대할 수는 있지만 그 방법은 어디까지나 지성인다워야 한다. 폭력을 쓰지 않아도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손님을 불러놓고 출입을 막으며 몸싸움을 벌인 것은 예의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학생들이 이런 소동을 부리는 동안 교직원과 다른 학생들은 바라만 보고 있었단 말인가.

고려대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의욕적인 플랜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운동도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이념의 노예가 돼 있는 일부 대학생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