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프로 홀대하는 TV…'공익강조'선언 무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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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KBS1 독서전문 프로인 'TV책방' 제작진은 요즘 갈등이 심하다. 한편으론 반갑고, 한편으론 안타깝고. 진퇴양난이다. 알찬 독서 프로를 맡은 자부심이 클 것 같은데 말이다. 사정을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민의 핵심은 편성시간의 변경. 2월부터 일요일 심야 12시30분에서 오전 7시30분으로 옮겨진 것. 일단 반가운 것은 'TV책방' 이 고정적으로 방영된다는 점. 종전엔 바로 앞에 방영되는 '명화극장' 의 길이에 따라 프로 자체가 죽거나 단축되는 게 예사였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은 덜게 됐다.

아쉬운 것은 시간대가 이른 오전이라는 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잠꾸러기가 많아 프로를 보기 어렵다는 항의가 종종 들어온다.

"한마디로 곤혹스럽습니다. 문화의식의 실종이라 할까요. 독서인구의 저변확대가 멀게만 느껴집니다. " 'TV책방' 을 연출하는 강현미 PD의 말이다.

독서 프로가 TV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공공성.공익성을 강조하며 최근 문화 프로를 앞다퉈 배치한 각 방송사의 편성안에도 책 프로는 눈을 씻어도 찾기 어렵다.

영상을 생명으로 하는 TV와 문자를 축으로 움직이는 책은 영원한 이방인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의 방송에선 독서 프로를 황금시간에 내보낸다. 그것도 최고의 석학들이 나와 열띤 논쟁을 벌인다.

현재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되는 독서 프로는 'TV책방' 이 유일하다. 문화의 사각지대에서 고군분투하는 셈. 반면 짧은 30분에 신간소개, 작가와 화제작, 명사들 독서편력 등 다양한 얘기를 집어넣어 구성의 완성도가 쳐지는 느낌. 소재도 문학작품이 중심을 이뤄 명실상부한 독서 프로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깊이 있는 대담형식으로 꾸미고 싶어도 아직 도전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만큼 우리의 독서기반이 취약한 것이 아닐까요. " 강 PD의 변이다.

그렇다고 열악한 독서환경만을 탓할 수는 없는 일. 방송사들의 개선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가장 화급한 사항은 전문성의 확보. 오랜 독서체험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작업이 진행자는 물론 토론자.연출자 모두에게 요구된다.

특히 최근에는 대입 논술시험 탓에 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만큼 시청자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 한층 활발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뜨겁게 논의되는 공영성 확보도 따지고 보면 시청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압축되는 까닭이다.

한가지 긍정적인 사실은 앞으로 TV 독서 프로가 2개 정도 신설된다는 점. EBS가 3월부터 위성 1TV로 '즐거운 책읽기' (월요일 오전9시50분) 를 방영키로 확정했으며, KBS도 오락과 정보를 반반 섞은 '책으로 만든 TV' (가제) 를 봄 개편에 추가할 움직임이다.

[라디오선 자리매김]

독서 프로는 TV보다 라디오쪽이 왕성하다. 청취자들의 반응도 좋아 안정적인 프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대상도 어린이에서 성인까지 다양하다.

대표적 프로만 꼽아도 5개. 그중 EBS - FM (104.5㎒) 의 '책과의 만남' (토요일 오후 9시40분) 이 청소년들에 인기다.

학교 독서교육운동에 앞장서온 숭문고 허병두 교사와 전문MC 강연희씨가 공동진행.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철저히 분석해 독서교육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EBS - FM은 또한 일요일 오후3시에 어린이 대상 프로인 '책나라 여행' 도 내보내고 있다. SBS - FM (103.5㎒) 의 '김영수의 책하고 놀자' 는 파격적 프로. 지난달부터 매일 (월~금요일) 오후 4시5분부터 55분간 방송되며 출판평론가 김영수씨가 오랜 체험을 풀어놓고 있다.

서점.학교.관공서.백화점 등 현장에 오픈 스튜디오를 마련한 것도 특징. KBS는 AM에 독서 프로를 배치했다. 도서.출판사.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1라디오의 '책마을 산책' (일요일 오후12시15분) 과 특정 작품이나 경향을 집중탐구하는 2라디오의 '라디오 독서실' (일요일 오전6시5분) 이 편성돼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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