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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심장병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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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그들 가운데 전직 대통령 2명의 죽음과 김 추기경의 선종은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의학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나머지 인물들은 재능의 출중함에다 나이 또한 50대 전후로 젊어서 가는 사람, 보내는 사람 모두를 애석하게 했다. 이들의 직접적인 사인이 바로 ‘돌연사’ 또는 ‘급사’라고 하는 심장병이어서 더욱 그렇다. 필자가 이 분야의 전문의여서 그런지, 미리 조심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더욱 크다.

심장병은 경우에 따라 한 번 오면 그것이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에 분명 무서운 질환이다. 그러나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은 아니며 알고 대비하면 피할 수 있는, 어찌 보면 병 그 자체보다도 무지(無知)를 더 경계해야 하는 질환이다. ‘모르면 죽고 알면 사는’ 질환이 바로 심장병인 것이다.

심장병은 혈관의 건강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혈관이 건강하고 피가 깨끗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혈관이 여러 가지 질환의 영향으로 좁아져 있고 덩어리진 피(혈전)가 돌아다녀도 어느 한계에 이를 때까지는 별다른 증세가 없다는 데 있다. 심지어 심장혈관이 80% 정도 막혀 있고 심근경색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증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20%에 달할 정도다. 이렇다 보니 과도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거나 추위·운동·담배 등으로 인해 심장의 부담이 갑자기 늘어나 증세가 나타나면 환자는 무방비 상태로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심장재단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심장병으로 수술 또는 시술을 받은 환자는 6만 명에 이르며, 이 중 7700여 명이 사망했다. 암과 뇌혈관 질환에 이어 국내 사망원인 3위, 하루 사망자 150명, 돌연사 원인 1위다. 특히 심근경색증은 돌연사의 8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치명적이다.

이 병은 40·50대, 그중에서도 남자의 사망률이 높고 식생활의 서구화와 운동부족, 스트레스를 유도하는 현대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 등으로 인해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다행히 발병 위험인자가 확실히 드러나 있어 사전대비가 가능한 질환이다. 대표적인 위험인자로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흡연, 비만 등을 꼽을 수 있다.

심장병 치료에 왕도는 없다. 예방과 조기발견이 최선의 방책이다. 특히 위험인자가 있는 사람은 돌연사 예방을 위해 반드시 심장병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심장병 방지를 위한 처방 중 한 가지만 추천하라면 필자는 매일 30분 이상 걷기를 권하고 싶다. 심장에 운동이 좋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마라톤에 도전하거나 무리하게 산을 오르는 등 과도한 운동을 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만 못하다”는 공자의 말씀은 심장병 환자에게 꼭 들어맞는 금언이다. 필자의 때늦은 염려와 충고가 심장병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일조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국양 가천의대길병원 흉부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