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글로벌시티-신세계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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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은 세계경제가 급격히 통합 과정을 겪고 있는 현시점에서 '책임있는 세계화 (responsible globality)' 라는 주제를 내걸었다는 점에서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흔히 글로벌리제이션이라고 부르는 세계화는 세가지 특징으로 설명된다.

첫째는 무역과 투자에서 장벽이 없어지는 것이다.

관세.비관세 등 각종 무역의 걸림돌이 철거되는가 하면 외국인 직접투자나 자본의 국경간 이동이 자유화돼 기업의 주인이 과연 어느나라 사람인지 구별

이 안될 정도로 세계경제가 하나의 시장처럼 통합돼 가는 것이다.

둘째는 연계망 형성이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생산.판매.유통.사무관리 등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기술.인력.경영 방식에 이르기까지 협력이 가능한 기업들과 끊임없이 전략적 제휴를 해나가는 것이다.

상호 보완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효율을 증대시키고 이윤을 더 크게 하기 위해 주저치 않고 외국 기업들과 손을 잡는다.

셋째는 전문화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어차피 세계경제가 하나로 통합될 것이면 남들보다 나은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실력을 쌓아야지만 생존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갖고 각국의 기업은 어느 특정 분야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화 추세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세계경제가 국경을 초월해 하나로 통합돼감으로써 자원의 배분이 빠르고 효율적이다.

제한된 생산자원이 낭비되는 것을 막고 이들이 가장 값어치있는 곳에 쓰이게 되는 것이 순기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또한 교역에 걸림돌이 없어짐으로써 재화와 서비스가 싼값에 수요자에게 전달되는 것도 순기능이다.

정부의 쓸데없는 간섭이 최소화된다는 것도 순기능중 하나다.

세계 모든 나라가 국경을 트고 자유교역에 참여하는데 어느 한 나라만 고집스럽게 정부통제를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보화.지식화의 추세는 세계화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결과이기도 하다.

하나로 통합된 경제내에 정보와 지식의 확산이 지연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생산자와 소비자는 분초를 다투면서 정보와 지식을 선점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순기능 못지 않게 세계화는 경제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사에 필연적으로 문제점을 던져줄 가능성을 안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96년 발간된 '문명의 충돌' 에서 국가간 혹은 지역간의 상이한 관행과 의식이 경제적 통합과정에서 충돌하게 마련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특수한 가치관과 중동지역의 종교적 패쇄성은 세계화 과정에서 서구의 보편주의와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역기능은 부국과 빈국간의 경제 양극화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세계에서 과거에 존재하던 중.후진국에 대한 보호막이 철거됨으로써 약육강식의 비인간적인 정글의 싸움이 필연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마틴과 슈만이 공저로 쓴 '세계화의 덫' 에서 이 점을 경고하고 있으며 이를 예방키 위한 제도적 장치가 선진국 중심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아시아 금융대란도 세계화 과정에서 나타난 역기능중 하나다.

시장통합의 속도와 제도개혁의 속도가 서로 다른 상황에서 금융자본이 자연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제도가 취약한 국가들을 강타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역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와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이 이번 다보스 경제포럼의 의의라고 본다.

세계화 추세를 막아서는 안되지만 문제점을 사전에 최소화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에 인류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본 것이다.

이른바 '책임있는 세계화' 를 강조하고 있으며 글로벌리티 (globality) 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앞으로 이른 시일안에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들은 후진국을 배려한 안전망 구축이라든가, 국제금융질서의 건전화를 위한 범세계적 금융감독기구의 창설이라든가, 교역 자유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세계무역기구의 강화 등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그것은 세계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역기능의 최소화에 초점을 맞춰야지 결코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multilateralism) 의 후퇴를 겨냥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또한 투기적 단기자금의 폐해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겠으나 더 중요한 것은 각국의 건전한 재정.통화정책과 구조개혁을 통해 위기에 대한 면역성.저항력을 키우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도 지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범세계적인 노력에 한국이 적극 동참해 신질서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며 우리의 개혁과정을 다른 나라에도 보여줌으로써 좋은 반면교사가 돼야 할 것이다.

유장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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