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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구조로 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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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가 1배럴에 43달러를 넘어서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내수 부진, 투자 위축에 더해 계속되는 고유가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10년 만에 찾아온 가마솥더위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전력수요도 에어컨 가동 등 냉방수요 증가로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사상 최초로 시간당 전기소비량이 5000만㎾를 넘어섰다. 1994년 2500만㎾를 돌파한 이래 10년 만에 두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전력수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올해도 여름철 전력수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왜냐하면 예상되는 최대수요 5100만~5300만㎾에 대비해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는 등 5800만㎾의 공급능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력수급에 문제가 없다 해도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바로 에너지 절약 문제다. 오늘날 전기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전기는 공기나 물과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한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재화다. 전기는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대규모 저장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설비는 수요가 가장 많은 경우에 대비해 충분한 용량을 미리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매년 4~5% 이상의 전력수요 증가가 예상되고 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해마다 200만~300만㎾의 발전소를 새로 건설해야 한다. 하지만 발전소 건설에는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고 장기간이 소요된다. 더욱이 요즘에는 님비(NIMBY)현상으로 발전소 건설입지 확보가 어렵고, 국제적으로도 지구온난화 등으로 환경규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어 이에 따른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력수급 균형을 이루는 방법이 발전소 추가 건설방법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수요 성장에 따라 일정부분 발전소의 추가 건설은 불가피하지만, 여름철에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효과적으로 관리한다면 발전설비의 상당부분을 건설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 한전은 여름철 전력수요 조절을 위한 수요관리로 매년 약 200만㎾ 이상의 최대수요를 억제해 오고 있으며, 2015년까지 700만㎾ 이상을 추가로 억제할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이 차질없이 이뤄지려면 국민 모두의 적극적인 이해와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와 한전은 다양한 수요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또 새로운 제도를 발굴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정책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업체와 가정 등 경제주체들의 동참이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10%만 줄인다면 연간 38억달러의 외화가 절약된다. 이는 자동차 35만대의 수출효과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조사한 2004년도 제조업 설비투자 동기를 보면 에너지 절약에 대한 투자비중은 0.9%로 극히 미약했다. 중국.인도 등 신흥 개발도상국의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로 인해 국제 고유가 현상은 고착화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석유 소비국으로 올라서 세계 에너지수요의 블랙홀이 돼 가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 에너지 수급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당장 중국이 수출하던 유연탄은 수출규제에 들어가 우리가 필요한 양을 확보하기 어렵고, 다른 나라에서 공급선을 새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에너지 절약에 대한 투자가 적극적으로 요구된다. 에너지사용 시설에 투자한 뒤 이에 따른 에너지 절감액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이나, 정부가 지원하는 에너지이용 합리화 자금을 이용하면 작은 투자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21세기는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와 효율적 활용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고유가시대를 헤쳐나가고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태양력.풍력 등의 대체에너지 개발과 해외 자원개발 참여, 에너지절약형 기술개발 및 시설투자 촉진 등을 통한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구조로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단기적으로는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으로 모든 경제주체가 에너지 절약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과제인 것이다.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