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SBS시트콤 '순풍산부인과'코믹연기 박영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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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야 임마! 빨리 돈 줘. 니가 '고' 했잖아 짜식. " 탤런트 박영규 (46)가 팔을 크게 휘두르며 목에 핏줄을 세운다. "도대체 '순풍 산부인과' 에서 보여주는 코믹연기가 어디서 나오는 거냐" 는 물음에 "평소 사는 모습대로" 라는 대답과 함께 고교 동창들과 모여 '고스톱' 하는 광경을 재연해준 것이다.

어리숙한 앞가리마에 힘없이 처진 앞머리. 처가살이하는 모습이 당당하다 못해 뻔뻔할 정도인 SBS시트콤 '순풍 산부인과' 속의 '영규'. 연기자의 역량이 '변신의 폭' 에 달렸다면 박영규는 요즘 단연 돋보인다.

사업에 뛰어들었다 IMF 때문에 집까지 홀딱 날린 인물. 한턱 내기로 했다가 음식값이 많이 나오자 술에 만취한 척하면서 후배들에게 계산을 뒤집어 씌우는 장본인이 바로 '영규' 다.

점잖은 신사로 멜로물 단골이던 그의 이전 모습이 오히려 가물가물할 정도. "학생 팬이 많아졌어요. 제 대사나 동작이 영락없이 그들 또래 수준이래요. " 그는 이런 연기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도 극중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흔히 나이가 들면 거기에 걸맞은 말이나 매너를 갖추려 노력하죠. 전 좀 달라요. 가능한 한 솔직하게 살려고 하죠. 젊었을 적 순수함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젊은 시절 누구 못지 않은 고생을 경험한 그는 연기에 대한 소신을 '레미콘론' 으로 풀었다. "연기자는 자기가 겪었던 다양한 삶을 계속 환기시켜야 합니다. 힘든 시절, 좋은 기억을 절대 잊지말고 레미콘처럼 끊임없이 버무리면서 달려야 합니다. 만약 회전을 멈추고 안주한다면 시멘트처럼 굳어져 한가지 연기밖엔 못하게 되죠. " '영규' 를 위한 변론도 잊지 않는다.

"나쁜 사람은 아니예요. 천성은 착하고 순수한데 IMF로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니까 어쩔 수 없이 약점이 드러나는 거예요. 우리 모두 그렇잖아요. 처가 신세를 지고 있는 판국에 어떻게 돈에 연연해하지 않을 수 있어요. "

'가수' 이기도 한 그는 오는 3월쯤 2집 앨범을 낼 예정. 89년 '카멜레온' 을 히트시킨 이후 꼭 10년 만이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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