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에 묻는다]'개혁의 길'선택한 우리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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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20세기에 '혁명' 만큼 인간에게 환희를 가져다 준 단어는 없다.

프랑스 혁명 (1789년) 은 근대의 시작이자 동시에 근대적 혁명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마르크스 '공산당선언' (1848년) 은 바로 프랑스 혁명에서 나타난 이상과 근대적 모순이 결합하여 '새로운 세상' 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러시아 혁명 (1917년) 은 20세기의 혁명을 주도한 기점 (起點) 이었다.

20세기 초 세계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계급해방과 민족해방은 사회적 실천의 준거가 될 정도로 세계는 혁명의 열정에 사로잡힌다.

그런 만큼 레닌.마오쩌둥.체 게바라.호치민 등 혁명적 이상을 표상하는 인물들은 20세기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러나 20세기는 곧 혁명이 소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1920년대 유럽혁명의 실패, 68년 유럽학생운동의 좌절로 시작한 소멸의 징후는 1989년 사회주의 붕괴로 마침표를 찍게 되고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은 역사의 추억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시기의 민족독립, 해방 이후 민족통일, 70년대 이후 민중해방 등에서 나타나듯 혁명적 열정은 지식인의 의무였다.

그러나 열정과 현실이 갈등을 일으키면서 혁명이 좌절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말. 사회주의 붕괴와 사회적 타협의 확산은 혁명의 현실적 가능성을 축소했으며 혁명의 기록은 박제된 공간 속에 가둬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혁명은 이제 시대착오적인가.

그렇게 단언할 수만은 없다.

아직 자본주의의 모순은 그대로 존재하고 민주주의는 아직 그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한 혁명의 이상은 밑바닥에서 꿈틀거릴 수밖에 없다.

많은 소수민족들에서는 아직도 민족해방은 주요한 역사적 과제로 자리잡고 있으며 제3세계에서는 시장을 절대화한 신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선진국 또한 환경.인종 등과 같은 새로운 문명적 과제와 씨름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지금 혁명이 아니라 개혁에서 대안사회를 찾아야 한다는데 잠정적 합의를 보고 있다.

그러나 개혁이 혁명보다 더 엄밀한 전략과 철저한 주체를 요구한다는 것은 20세기의 경험이다.

그 경험을 고려하면 개혁의 실패는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때 자본주의의 천민성, 전통과 현대의 단절로 야기된 왜곡된 시민사회, 정치적 후진성이 혁명의 불소시게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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