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지속 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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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에는 독재와 탄압의 장본인이었다는 단죄와 경제 개발의 공로에 관한 찬사가 뒤섞이기 일쑤다. 그중 어느 한쪽을 고집하기보다 양면을 두루 감안하는 게 좀더 원만한 평가이겠지만 양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과학적인 분석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독재는 어떤 내용이었고 개발은 어떤 것이었으며 그 상호 연관은 무엇이고 어느 대목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둘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일인 것이다.

*** 개발독재 모델은 식민지 당국

이런 과학적인 분석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아니다. 다만 그 작업을 위한 하나의 시안으로서 나는 박정희를 '지속 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라는 각도에서 접근해 봤으면 한다. 그가 주도한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은 생태계나 사회정의의 지속 가능성 따위를 처음부터 도외시한 개발이었을 뿐더러 혹독한 인권 탄압과 냉전체제의 영구화를 전제한 것이어서 어차피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시대의 독재는 일반 국민의 기본권은 물론 보수적 시장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유재산권과 기업인의 경영권도 거침없이 짓밟곤 했다.

이런 개발을 두고 '유공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결코 비아냥거림은 아니다. 세상엔 탄압만 했지 개발은 못한 독재자들이 수두룩하다. 또한 지속 불가능한 발전이라도 일단 해내지 않았으면 어떻게 지금 와서 좀더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의 전환을 시도할 수 있었겠느냐는 물음도 가능하다. 어쨌든 한국 경제의 놀랄 만한 성장을 하나의 성과로 인정한다면 그 도약단계에서 유능한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해낸 실적에 대한 평가는 당연하다고 본다.

물론 '한세대 안에 국민소득 100달러에서 1만달러로'라는 '한강의 기적'엔 여러 가지 다른 요소가 작용했다. 우선 그것은 오늘날 국민소득 100달러 또는 200달러인 어느 후진국이 문득 고속 성장을 시작하는 상황처럼 기적적인 것은 아니었다. 해방 후의 갑작스러운 국토 분단으로 그나마 돌아가던 한반도 경제에 일시적인 마비상태가 왔고 이렇게 엎친 데 전쟁으로 인한 대대적인 파괴가 덮쳐 한국 사회의 빈곤이 극에 달했던 것이다. '단군 이래 대물림해온 가난'은 아니었으며 도약의 저력을 충분히 내장한 사회였다.

더구나 박정희가 한반도에서 지속 불가능한 발전을 창안한 것도 아니다. 국권 박탈과 인권 탄압을 겸하면서 드디어는 항구적 전쟁 체제로까지 나아감으로써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개발을 수행한 선구적 모델로 일제 식민지 당국이 있었다. 박정희는 이 모델을 그가 설정한 항구적 냉전체제와 남북대결 체제에 맞게 적용하고 발전시켰는데, 이것도 공로라면 공로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식 개발이 좀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전제조건을 마련했다는 논법에는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박정희 독재에 맞서 일찍부터 민주주의와 공해 추방, 냉전의식 탈피 등 지속 가능성을 위해 싸워온 세력도 경제 발전의 공로자로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실제로 민주화운동이 없거나 미약한 상태에서 개발독재 일변도로 나간 나라들은 개발조차 실패하지 않았던가.

*** 박정희 시대의 부끄러운 유산

이른바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결합이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진정한 민주화 세력과 건전한 산업화 세력'이라는 토를 단다면 나 자신도 두 세력의 행복한 결합을 소망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도 '민주화 대 산업화'라는 양분법 자체를 해소하는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이 긴요할수록 박정희 시대를 무턱대고 그리워하는 것은 백해무익이다. 그의 시대는 처음부터 지속 불가능한 시대였기에 영원히 끝난 것이고 영원히 끝남으로써 오히려 향수(鄕愁)의 대상으로서 1차적인 요건을 갖추게 됐다. 게다가 독재시대에 주입된 인권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감증이 아직도 너무나 깊고 넓게 퍼져 있기에 향수가 발동할 요건이 마저 채워지게 된다. '박정희 향수'야말로 박정희 시대의 가장 부끄러운 유산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서도 '지속 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 박정희에 대한 적당한 인정 또한 있어야 한다고 본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창작과비평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