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 지도에, 인터넷 강의에 하루 해는 너무 짧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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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여고 장지영 교사가 제자 박은경(서울대 2)·김선나(이화여대 1)·유지원(성균관대 1)씨(왼쪽부터)와 함께 관악산을 찾았다. [황정옥 기자]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란 말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교권이 약화되고 사교육이 성행하면서 이 말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제자들을 위해 밤을 새워 공부하고 진학지도 전략을 짜는 선생님들이 있다. 공교육이 약화됐다고는 하지만 이런 선생님들이 있기에 인재가 길러질 수 있다. 열려라 공부에서 이 시대의 ‘참’ 선생님들을 찾아 소개한다.

지난 13일 오전 7시30분쯤 서울 관악산. 삭발한 머리에 90㎏에 육박하는 우람한 몸매를 가진 중년 남자가 앳된 여대생 3명과 함께 등산을 하고 있었다. 이 중년은 교육 1번지라 불리는 서울 대치동의 한 학교에서 23년째 수학교사로 활동 중인 장지영(47) 교사다. 자신의 제자들과 바쁜 시간을 쪼개 산에 오른 것이다. 내일모레면 50대에 접어들지만 지금도 직접 학생 하나하나의 성적을 분석해 입시 진로를 지도하며 진선여고의 영원한 진학지도부 ‘짱’으로 불리는 장 교사를 만났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

장 교사는 진선여고 때부터 연예인으로 활동했던 영화배우 전지현씨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와 동기생으로 자신이 3학년 담임을 맡았던 양모씨는 선명히 기억한다. 장 교사는 양씨에 대해 “중학교 때까지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공부에 대한 어머니의 성화에 반발해 고교 입학 후 잘못된 길을 가는 바람에 한때 비뚤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학업에 대한 양씨의 가능성을 알아본 그는 담임을 맡은 뒤 등·하굣길을 책임졌다. 2주일에 한 번씩은 어머니와 양씨를 불러 함께 힘든 점을 이야기하며, 상담을 도맡았다. 담임을 하면서 양씨와 어머니, 장 교사가 함께 부둥켜 안고 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양씨는 장 교사의 진심을 이해했고, 다시 책을 잡았다. 결국 1년 만에 수능 점수를 3학년 첫 모의고사 때보다 무려 120점 올려 이화여대에 합격했다. 때론 아버지처럼, 때론 호랑이처럼 학생들을 지도한 덕에 장 교사가 3학년 담임을 맡았던 반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줄곧 70%에 이를 정도다.

질 높은 강의를 위해 노력할 때가 가장 행복

1987년 고려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장 교사는 담당 교수의 추천으로 신설학교인 서울 화곡동 한광고등학교에서 처음 분필을 잡았다. 1년 뒤 대학 선배의 추천으로 20년 넘게 평생직장이 된 진선여고 선생님이 됐다. 장 교사는 “교사는 잘 가르치는 것으로 학생들에게 어필해야 한다”며 “보다 나은 강의를 위해 노력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90년대 중반부터 ‘눈으로 푸는 수학’ 법을 개발해 상위권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줄곧 3학년 담임을 맡았고 지난 5년간 학생들의 진학지도부장도 맡았다. 2008학년도 입시에서는 서울대 정시 1단계 커트라인을 예측, 이날 함께 산에 올랐던 박은경(20·서울대 영문학과 2)씨를 서울대에 합격시켰다. 박씨는 “연세대 수시2-2 시험을 보러 학교 앞까지 갔는데, 선생님께서 ‘너는 서울대 갈 수 있다. 돌아오라’고 전화를 하셔서 다시 학교로 되돌아갔다”며 “수능점수가 아슬아슬해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결실

“모든 것의 기본은 체력 아니겠어요? 공부를 하고 싶어도 체력이 없으면 못하는 겁니다.” 장 교사는 학생들에게 체력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학생들을 체육관으로 데려가 사비를 들여 운동시키는 것도 공부의 기본을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에서다.

요즘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응모했던 강남구청 인터넷방송과 EBS 현직교사 공모에서 지난달 선정돼 강의를 하고 있다. 장 교사는 “나이가 들어도 ‘노력하면 된다’는 진리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20여 일 동안 강의를 녹화하느라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자극 받을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장 교사. 그는 세 시간 넘게 산을 타는 동안 제자들이 다치진 않을까 험난한 곳마다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길엔 제자를 향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교단에 서있는 날까지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모두가 나의 딸입니다.”

글=최석호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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