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나이테를 들여다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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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매스컴에서 30대에 새로운 일을 시작해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뭔가 해야지' 하는 강렬한 욕망이 생깁니다. 그러나 막상 뭔가를 하려면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괴로워집니다." 한 30대 주부의 하소연이다.

정말 지금 나이는 '변화' 를 갖기에는 너무 늦은 걸까. 새해가 되고 나이를 한 살 더 얹었다. 이때면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나이의 의미. 최근 '여성이 겪는 인생의 사계절' 을 번역 출간한 김애숙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전업주부와 직장여성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들의 성인기 발달과정에는 남성과는 다른 공통점이 있다" 고 설명한다.

▶20대 = 지금의 20대 여성들은 가정과 일을 동시에 자신 삶의 무대에 둔다. 그러나 한편으로 너무 지성적이면 매력을 잃을 것이라는 염려에 빠진다.

결혼지향적인 여성들은 전업주부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갈등이 적지만 직장을 가진 여성들은 '가부장제 - 일' 사이에서 큰 갈등을 느낀다.

▶30대 초반 = '결혼.직업' 에 대해 점검하기 시작한다. 직장 여성들은 '나는 왜 양쪽 일을 가지고 이렇게 힘겹게 사는가' 하는 고민에 빠진다. 전업 주부들은 '나는 뭔가' 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전업 주부인 문희경 (33.서울 강남구 일원동) 씨는 "어른들 말씀이 한창 아이를 키우는 30대 때가 재미있었다고 하지만 저는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라고 말한다. 30대 초반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재구성해본다. 가정보다 일에 비중을 옮겨 가는 경향을 보인다.

▶30대 후반 = 여성이 가장 많이 변화하는 시기. 자아가 강렬하게 표출하고 외부적으로도 변화가 많다.

"보험판매.책 외판도 해보고 이것저것 배워보기도 했어요. 시댁에 대해서도 배짱이 생기는지 하고싶은 말을 많이 합니다."(K씨) "학부모 모임.동창회 등 모임이 많아지면서 몰려다니며 놀게 되요. 탈선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P씨) 30대 후반 여성들은 집안에서든, 직장에서든 제 목소리를 내려한다.

남자들은 '마누라가 토끼에서 호랑이로 변했다' 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의 물결을 바꿔 보려는 시도를 하는 때도 바로 이 시기. 그러나 김 연구원은 "자신의 용기.자질.주변의 전폭적인 지원 등 삼박자가 맞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 고 말한다.

대부분 주부들은 이 시기에 '가정에 좀 덜 얽매이자' 는 데서 스스로 타협점을 찾는다. 대신 각종 외부 모임에서 어느 정도 심리적 보상을 얻는다. 직장 여성들은 직장에서는 전문가로서 대우받고 받고,가정에서는 아내나 어머니로서 노력을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모두를 수행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40대 = "40대가 무서운 나이라는 말이 맞은 것 같아요. 제 자신의 한계가 너무 분명해 집니다. 인생의 최전방에 섰다는 압박감도 있어요. " 주부 김미숙 (42.서울 서초구 서초동) 의 말.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서도 40대는 위기의 시기다.

'내 삶이 가치가 있었는가' 는 근본적인 질문이 고개를 드는 때이기 때문. 그러나 이미 가정과 직장에 깊이 개입돼 돌이킬 수도 없다. 때문에 종종 '덫에 걸린 것 같다' 는 느낌을 갖게된다.

전업주부의 경우 '남편이 명령하면 가슴 속에서 불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른다' 고 느낀다. 직장생활을 계속했던 여성도 고단한 삶의 대가가 기대한 것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끼면서 위기를 겪기도 한다.

▶50대 = '50대에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는 속설은 어느 정도 사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인생을 즐겨보자' 는 생각을 가진다. 주부들의 경우 가족에 대해 '최소한 할 도리는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보살피고 싶지는 않다' 는 생각을 한다. 자신을 위해 제2의 인생을 즐기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여성들의 삶에는 17~22세, 28~33세, 40~45세 무렵 세 번의 전환기가 나타난다. 비록 전환기의 갈등이 힘들더라도 '냉정하게 자신을 응시한다면' 오히려 삶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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