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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21세기 자본주의 패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다음 세기에는 어떤 자본주의가 우리의 경제적 운명을 재단 (裁斷) 할 것인가.

21세기에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등장하는가.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어빙 크리스톨은 21세기 이데올로기 싸움터에서는 세개의 자본주의가 각축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일본과 아시아 중진국들의 신중상주의적인 체제, 미국과 영국의 다윈주의적 (Darwinist) 인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유럽의 사회적 시장자본주의다.

영미형의 자본주의는 80년대 레이건과 대처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경제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 경제는 시장원리에 맡기고 작은 정부의 원칙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자유무역이 절대선 (絶對善) 이고 기업활동의 유일한 기준은 수익이다.

반면에 유럽형의 자본주의는 기업활동에서 수익과 함께 이익의 사회환원과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 그리고 기업활동과 근로자의 이익 또는 사회복지와의 조화가 강조된다.

개인주의 보다 공동체적인 가치가 더 중시된다.

근로자도 기업의 공동의사 결정에 참여한다.

아시아 모델은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과 아시아의 금융위기로 독립변수의 대접을 받지 못한다.

유럽의 자본주의는 지금 영미형 자본주의 앞에서 수세에 있다.

완전한 자유경쟁을 주장하는 영미형 자본주의가 정보기술의 발달과 연결된 글로벌화의 조류에 가장 적합한 탓이다.

98년 독일의 다임러 벤츠가 미국의 크라이슬러와 합병을 결정한 것도 영미식의 신자본주의에 보수적인 유럽 대륙의 기업이 발빠르게 적응한 사례라고 하겠다.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과 독일의 콜 전총리가 영미형과 유럽형을 절충한 제3의 길을 모색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도 성격이 모호하다.

유럽의 케인스주의자들은 블레어의 제3의 길이 너무 대처리즘에 경사 (傾斜) 됐다고 불만이다.

영미형 자본주의와 유럽형 자본주의의 어느쪽이 21세기 세계경제의 방향타를 잡을 것인가, 아시아 모델이 설 땅은 어디인가에 대한 대답은 한국경제의 이해와 직결된다.

특히 시장원리주의에 반기를 들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접목시키겠다는 DJ노믹스 (김대중경제) 는 영미형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자유경쟁.시장개방.구조조정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DJ노믹스의 기본철학에 따라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와 프랑스식 국가자본주의 요소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보화사회 분석의 제1인자로 꼽히는 버클리의 사회학자 마뉴엘 카스텔스는 자본주의 자체가 1백50년 만에 대대적인 구조조정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예상되는 결과를 놓고 보면 앵글로색슨형 자본주의와 유럽형 자본주의의 경쟁은 냉전시대의 미.소대결을 방불케 하는 건곤일척 (乾坤一擲) 의 싸움 같다.

그건 신자본주의를 준비하는 싸움인지도 모른다.

새해 벽두에 출범한 유럽공동체의 단일통화 유로 (Euro) 는 유럽 자본주의가 앵글로색슨 자본주의를 향해 날린 가공할 미사일의 하나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이 진짜 미사일이 날고 폭탄이 터지는 눈에 보이는 싸움이 아니라고 천하태평이다.

지난해 오늘 우리는 외환보유액 89억달러에 얼마나 절망했던가.

그것은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강 건너 불 보듯 무관심한 글로벌 불감증 탓이었다.

영미형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경쟁과 시장개방의 압력을 가해 올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경우에서 보듯 나라의 기본틀도 위협한다.

그뿐인가.

세계의 정치질서와 문화까지도 앵글로색슨식 민주주의와 소비문화 일색으로 바꿀 기세다.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가 미국을 극도로 경계하고 싱가포르의 선임총리 리콴유 (李光耀)가 아시아적인 것을 강조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아시아인들의 이유있는 '아우성' 인 것이다.

우리 정치가 무슨 007 같은 '529 공방' 으로 정치적 자살행위에 국력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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