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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가 시오니즘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러시아에 유대인의 시오니즘에 관한 논란이 한창이다.

러시아에서 시오니즘이란 유대인들의 민족주의 의식을 비판적으로 일컫는 말. 특히 러시아 공산당이 볼셰비키 혁명기때 유대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세계지배 음모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해왔다.

이 용어는 그동안 묻혀 있었으나 지난 10월 공산당 소속의 알베르트 마카쇼프 의원이 러시아의 경제파탄은 유대인들의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면서부터 정치권의 화두로 되살아났다.

그는 "현재 러시아 정부내의 실세는 모두 유대인들이며 러시아민족 출신은 그들의 운전사들 뿐" 이라고 비꼰 뒤, 유대인의 정.재계 진출을 막기 위해 (인구) 비례대표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대인연합회와 인권단체들은 즉각 "인종차별적 발언" 이라고 발끈, "마카쇼프를 처벌하라" 는 결의안을 국가두마 (하원)에 상정했다.

공산당이 다수인 하원은 마카쇼프를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부결해버렸다.

논란이 수그러드는 듯 했으나 공산당 빅토르 일류힌 의원이 지난 22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대한 다섯번째 탄핵안을 제출하면서 "현정부에 유대인들이 너무 많아 국가가 위기상황에 몰리게 됐다" 고 재차 공세를 펴는 바람에 사태는 확산됐다. 이스라엘 대사관과 러시아 유대인연합회 등이 당장 조직적으로 반발, 공산당과 옐친 대통령의 공개적인 입장표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공산당은 한치 양보없이 맞받아쳤다.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는 23일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러시아를 떠나거나 러시아를 유일 조국으로 받아들여라" 고 몰아붙였다.

이번엔 유대인 권리보호 전문기관 시몬 비젠탈 센터가 나섰다.

"주가노프의 발언은 스탈린의 노선이며 전형적인 반유대주의적 발언" 이라고 규정, 유럽의회에 반유대주의적 발언을 일삼는 러시아 정치인들의 입국을 불허토록 요청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옐친 대통령은 26일 TV 특별회견에서 민족주의와 정치적 극단주의를 차단하는 '중대한 조치' 를 준비하고 있다며 중재에 나섰지만 감정의 골이 깊어가는 양측의 화해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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