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도체 빅딜,타협점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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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대와 LG간의 '반도체 빅딜' 이 우려할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통합법인의 경영주체로 현대전자가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오자 LG반도체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평가기관인 아서 디 리틀 (ADL) 사를 미국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나섰다.

정부와 현대측은 ADL의 평가보고서를 인정하고 있고, ADL측은 여전히 객관성과 공정성을 자신하고 있다.

오늘 있을 주요채권단회의를 앞두고 타협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LG측의 반박보고서 발표와 ADL사 제소에 관한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측은 "ADL사의 평가결과는 차질없이 그대로 이행될 것" 이며 만약 "LG측이 반도체 빅딜에 불응할 경우 만기대출금 회수 등 금융제재는 피할 수 없을 것" 임을 거듭 확인했다.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

LG측의 고집과 금융제재가 서로 맞설 경우 LG그룹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한 국민경제적 충격과 파장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빅딜은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 아니며 구조조정의 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을 우리는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다.

'빅딜을 위한 빅딜' 에 집착하다 교각살우 (矯角殺牛) 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반도체 빅딜은 처음부터 적잖은 논란을 불러왔다.

장기불황을 이유로 국내 굴지의 비교우위산업을 인위적으로 통합할 경우 세계시장 점유율만 낮아지고, 과잉시설의 통폐합 없는 물리적인 통합법인은 자칫 동반부실화를 결과할 우려도 적지않다.

최근에는 국제 반도체경기가 되살아나고 있어 굳이 합병이 필요하느냐는 문제제기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반도체 빅딜의 필요성 여부를 새삼 재론할 의도는 없다.

반론 못지않게 빅딜의 당위성 또한 설득력을 갖는다.

두 회사의 빚이 18조원이 넘는데다 연간 3천억~5천억원의 제품개발비가 중복투자되고, 자본생산성이 선진업체의 절반수준인 상태에서 국제경쟁력 확보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반도체 빅딜은 7개 업종 빅딜과정에서 재계의 합의사항이자 국민에 대한 약속이다.

이것이 무산될 경우 이미 합의된 다른 업종의 빅딜에 대한 악영향은 불을 보듯 뻔하다.

LG측에 대한 정부당국의 강경대응도 이런 연유 때문으로 이해는 한다.

그러나 어떤 통합이든 그 통합이 실효를 거두려면 우선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두 당사자와 전경련에만 미루지 말고 경영주체 선정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해 상호타협을 끌어내는 데 응분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차제에 현대가 각종 빅딜에서 '독주' 한다는 항간의 시각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상호협의와 절충을 통해 통합법인의 지분재조정이나 다른 보상적 빅딜 등으로 타협점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방적 밀어붙이기보다 끌어안는 전략이 훨씬 효과적이다.

현대도, LG도, 과잉.중복투자로 지탄받고 있는 반도체산업도 우리 경제에는 하나같이 보배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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