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박테리아 잡는 ‘수퍼항생제’나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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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어떤 항생제에도 내성을 띠는 수퍼박테리아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2007년 10월 당시 12세 소년이던 오마르 리베라는 미국 브루클린의 한 농구 코트에서 작은 상처를 입었다.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소년은 결국 당황해하는 의료진과 비통해하는 부모를 곁에 두고 숨을 거뒀다. 수퍼박테리아로 알려진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에 감염된 것이다. 수퍼박테리아는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박테리아를 일컫는다. 당시 미국 질병관리예방센터(CDC)는 미국에서만 매년 1만9000명이 MRSA에 감염돼 목숨을 잃는다고 발표했다. 감염자 가운데 20%가 사망에 이르고, 나머지 80%는 열흘 내외의 병원치료를 받고 1인당 평균 3만 달러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도 코에 수퍼박테리아가 감염돼 살을 파먹혔다는 미확인 보도가 있었다.

인류와 세균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인류는 항생제라는 방패를 꺼내들었지만, 세균은 ‘내성’이라는 또 다른 창을 꺼내들어 인류를 위협해 왔다. 수퍼박테리아의 출현에 인류는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해 냈지만, 또 다른 수퍼박테리아가 나타난다. 이 전쟁은 언제쯤 끝날까. 연세대 의대 세균내성연구소의 용동은 교수는 “인류가 항생제를 사용하는 한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는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와 세균의 전쟁사=인류가 손에 쥔 최초의 항생제는 페니실린이다. 1928년의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인류를 괴롭혀온 매독의 치료가 가능해졌다.

페니실린 발견 전에는 수술환자의 생존율이 30%에 불과했으나, 페니실린 사용 후에는 80% 이상으로 늘었다. 폐렴·성홍열·혈액중독·디프테리아·매독·임질·심내막염·수막염 등 여러 가지 질병에 효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세균은 60년대 페니실린에 내성을 가지는 박테리아(포도상구균)를 앞세워 반격을 시작했다. 이에 인류는 다시 메티실린이라는 항생제를 개발하며 승리하는 듯했지만, 70년대 메티실린에도 내성을 보이는 MRSA가 등장하며 인류를 위협했다.

여기에 다시 인류는 초강력 항생제인 반코마이신을 새롭게 개발해 세균과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반코마이신은 ‘최후의 항생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러나 세균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96년 일본에 이어 99년 한국에서 반코마이신에 부분적으로 내성을 보이는 박테리아(VISA)가 등장했고, 2002년에는 반코마이신마저 듣지 않는 수퍼박테리아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VRSA)’의 출현이 보고됐다.

◆수퍼항생제=VRSA의 등장에 인류는 화이자의 ‘자이복스’를 앞세웠다. 2002년 발매된 자이복스는 반코마이신 등 기존의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된 감염증들을 치료할 수 있어 의학계에서는 ‘수퍼항생제’로 불렸다. 구조적으로는 기존의 설파계나 퀴놀론계와 달리 옥사졸리디논 계열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자이복스에 대한 내성균이 간헐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아직 완벽하게 내성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시간 문제일 뿐이다.

자이복스의 뒤를 이을 수퍼항생제로 국내 토종 제약사의 후보물질이 부상하고 있다. 동아제약이 개발한 항생제 물질 ‘DA-7218’이다. 화학구조로는 자이복스와 같은 옥사졸리디논 계열이다. 동아제약은 이 물질에 대해 올 6월 미국에서 임상시험 2상을 마치고 마지막 3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승인을 받는 것이 목표다. 이 물질은 기존의 항생제에 비해 최대 여덟 배의 약효를 보이고, 내성을 보이는 세균의 출현 비율을 16분의 1로 낮춘 것으로 보고됐다. 이 물질을 처음 발견한 동아제약의 임원빈 수석연구원은 “세계적인 항생제학회에서 발표할 때마다 관심이 너무 커 부담이 되기도 한다”며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수퍼항생제가 전 세계 인류를 위해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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