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DJ 서거에 당비서·당부장급 보내 ‘극진한 예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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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기민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전이 관영 중앙통신에 타전된 건 서거 15시간여 만인 19일 오전 5시30분이다.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는 이틀 만에 조전을 냈었다. 조문단 파견도 노동당 중앙위 비서와 당 부장급으로 구성해 무게를 실었다. 당비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에서 결재문서를 다룰 수 있는 청와대 수석급에 해당된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김 위원장과 북한 핵심 권력층이 극진한 예우를 하고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고려대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는 “2000년 정상회담 때 상대역의 서거인 데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선호했다는 점에서 조문단 파견이 이뤄진 것”이라며 “조문정국을 조성해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려는 효과도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 조문단의 단장은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맡을 가능성이 있다고 정부 당국은 예상했다. 그는 2005년 8·15 행사를 위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입원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고 김 위원장의 쾌유 메시지를 전달한 적이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김기남 비서는 상반기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 수행 빈도 1위였던 측근 중의 최측근”이라며 “북한은 김대중 서거 국면을 고위급 남한 파견의 계기로 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 통일전선부장으로 최근 아태평화위원장을 겸하게 된 김양건, 이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등도 함께 올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19일 조문단 파견을 알리면서 민간기구를 표방하는 아태평화위원회(위원장 김양건)를 내세웠다. 통일부 등 당국이 아닌 김대중평화센터 측에 통보해 왔다. 이 때문에 북한이 이명박 정부를 따돌리고 민간 차원에서만 논의하려는 전술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북한은 “보내온 부고전문을 잘 받았다”고 밝혀 김대중평화센터 측이 아태에 먼저 보낸 부고에 대한 회신성격임을 나타냈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이른바 ‘통민봉관’(通民封官) 전술을 쓴 건 아니라는 것이다.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민간교류를 권장하시면서도 이런 (조문단)문제의 공식 창구는 정부가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정부와 긴밀히 논의할 것임을 강조했다. 북한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의 사망 때도 정부가 아닌 현대 측에 조전과 조문단 문제를 통보했었다.

정부는 조문단 파견을 수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하고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통해 곧 구체적인 방문절차와 경호대책 등을 마련키로 했다. 조문단이 탄 항공기의 관리나 서울에서의 차량이동·숙소·경호 문제 등은 대부분 우리 관계당국이 책임지고 하게 된다. 북측 대표단은 김정일 위원장의 조화를 갖고 빈소에 도착해 조의를 공개낭독하는 형태로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일정 없이 조문만을 마친 채 몇 시간 만에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북측이 대남통지문에서 언급한 대로 1박2일 일정까지 체류하거나 당국 간 접촉을 시도할 가능성에도 정부는 대비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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