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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시설 5곳 이 잡듯 '현미경 정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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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알카에다가 9.11 이후 미국을 어떤 식으로 공격할 계획인지가 일부 드러났다.

뉴욕 타임스는 9일 알카에다가 뉴욕에서 운항 중인 관광 헬기를 이용해 뉴욕 내 주요 시설에 대한 테러 공격을 감행하려고 준비 중이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헬기 탑승객들과 운항에 대한 감시가 강화됐다는 것이다. 지난주 영국정부에 의해 검거된 알카에다 용의자 12명에게서 압수한 1000장의 디스켓을 분석한 결과 그 같은 계획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뉴욕에선 일주일에 관광헬기가 약 600~700번이나 이.착륙하고 헬기는 한대에 7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 크기여서 폭탄을 가득 실으면 엄청난 폭발력을 갖게 된다.

◇5개 금융시설이 목표=시사 주간지 타임은 최신호에서 파키스탄 정부에 검거된 알카에다 요원들에게서 압수한 컴퓨터 3대와 51개의 디스켓에 이들이 타격 목표로 삼은 미국 내 금융 관련 시설 5곳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500여장의 사진이 들어있었다고 보도했다.

타임에 따르면 이 자료는 뉴어크에 있는 금융회사 프루덴셜 빌딩을 묘사하며 "폭약을 실은 검은색 리무진이 트럭이나 밴보다 훨씬 쉽게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유조차를 통해 정문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게다가 알카에다는 올 1월 프루덴셜 빌딩을 새롭게 촬영했고, 리무진의 앞좌석만 빼고 폭약을 싣기 위해 의자들을 떼어내는 방법까지 연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알카에다가 두번째 공격 대상으로 삼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대해선 증권거래소 건물의 전면 여섯번째 기둥 뒤 창문이 "부서지기 쉬워 보인다"고 기술할 정도로 꼼꼼히 관찰했다.

또 다른 목표물인 뉴욕의 씨티그룹 빌딩에 대해선 "(9.11 때 공격한)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달리 강철 구조물이 아니라 벽에 의해 지탱되는 건물"이라고 건축공학적 분석을 한 뒤 가스트럭이나 유조차로 공격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워싱턴에 있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 대해선 "주변 경계가 심해 공격이 쉽지 않다"고 압수된 알카에다의 분석자료는 지적했다.

◇미 대선 틈타 미 본토 공격=타임은 또 파키스탄 정보 당국이 최근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제공한 정보에는 알카에다가 고속보트나 잠수부를 동원해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직전 뉴욕항을 공격하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미 연방수사국(FBI)도 최근 의회 지도자들에게 알카에다 요원들이 워싱턴이나 다른 지역에서 의회 지도자들을 노릴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내렸다고 타임은 보도했다.

미 정보 관계자들은 특히 알카에다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2001년에 자행한 9.11 테러의 경우 이미 96년부터 공격을 구상했고, 98년 아프리카에서 폭탄 테러를 한 미국 대사관 두 곳에 대해서는 93년부터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알카에다의 테러 정보를 입수한 국토안보부 톰 리지 장관은 백악관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 중앙정보국(CIA).FBI 국장들과 함께 대책회의를 한 뒤 목표물을 적시하면서 테러 경보를 격상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타임은 보도했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의 국내 보안담당 보좌관 프랜시스 프라고스 타운젠드는 "우리가 알카에다의 테러 계획을 막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게 그들 계획의 전부인지, 아니면 일부인지는 알 수 없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꼬리 잡힌 알카에다 조직원=CIA는 올 여름 무사드 아루치(40)라는 한 파키스탄인의 전화와 인터넷을 도청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9.11테러의 기획자로 알려진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의 사촌이다. CIA의 귀띔에 따라 파키스탄 정보당국은 6월 12일 그를 체포했다. 아루치는 CIA에 귀중한 정보를 털어놓았다. 알카에다가 "곧" 미 본토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또 조사과정에서 알카에다의 차세대 지도자인 모하메드 나임 누르 칸(25)의 얼굴을 확인해 주었다. 그동안 칸은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하고 있어서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칸은 컴퓨터를 잘 다루는 신세대 알카에다 조직원이었다. 그는 주로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암호화된 지령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에게 보냈다. 또 칸은 CIA의 도청을 우려해 절대로 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

7월 초 칸은 파키스탄을 벗어나려 했다. 자신을 겨냥한 CIA의 감시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CIA가 한발 앞섰다. 7월 13일 칸은 파키스탄의 라호르 지방에서 체포됐다. 칸은 결국 자신이 운영하던 알카에다 조직원 명단을 털어놓았다.

7월 24일 장갑차로 무장한 CIA와 파키스탄 특공대가 파키스탄 구자라트 지방의 허름한 2층집을 덮쳤다. 이 집에 은신하고 있던 알카에다 조직원 3명은 격렬히 저항했다. 16시간에 걸친 총격전 끝에 CIA는 이들을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미 본토 공격 계획서가 담긴 컴퓨터와 디스켓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 미 수사당국은 파키스탄과 영국에서 넘겨받은 컴퓨터 파일을 이용해 파키스탄의 알카에다 요원과 e-메일을 주고받은 미국 내 6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추적 중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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