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리오틴토 간첩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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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지난달 초 중국철강공업협회와 세계 제2위 철광석 업체인 호주의 리오틴토는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팽팽했다. ‘일본 기업이 먼저 계약을 체결했으니 관례대로 그 가격을 따르라’는 리오틴토의 요구에 중국 측은 ‘이제부터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맞섰다. 협상은 결렬 위기에 몰렸다. 바로 그때 호주 측 협상책임자였던 스턴 후 리오틴토 상하이사무소 수석대표가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됐던 것이다.

‘협상 중에 상대 대표를 체포하다니….’ 서방언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협상이 끝난 뒤 처리하거나, 아니면 협상 테이블에서 거론했어야 할 일’이라는 지적이었다. 더 큰 관심은 중국의 의도였다. 올 6월 리오틴토가 195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투자 제의를 막판에 거부한 게 직접적인 이유라는 분석이 나왔다. 투자가 무산되자 분풀이를 했다는 추측이다.

‘협상대표 체포’라는 극단적 수단을 통해 중국이 서방에 전달하려던 메시지는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지난 13일 리이중(李毅中) 중국 공업신식화부 부장은 내외신 기자들을 불러 “세계 철광석 값 결정에서 중국의 발언권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철광석의 52%를 수입하는 수입대국의 당연한 권리라는 주장이었다. 호주의 BHP빌리턴·리오틴토와 브라질의 베일 등 3대 메이저 업체가 좌지우지하는 가격결정 시스템을 깨뜨리겠다는 뜻이다. 그게 바로 리오틴토 간첩 사건의 ‘의도’다.

궁지에 몰린 측은 오히려 리오틴토다. 최대 고객을 빼앗길 판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수입선을 브라질·인도 등으로 바꾸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법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 목에 걸면 목걸이’ 식이어서 스턴 후의 죄가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철강업계는 이번 사건으로 철광석 가격 결정시스템이 어떤 식으로든 바뀔 것으로 분석한다. 중국의 승리라는 얘기다.

철강업계뿐만 아니다. 중국은 세계 경제위기를 틈타 다방면에서 자기 중심의 국제질서를 짜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가 그래서 나왔고, 보유 달러를 앞세운 자원 독식 움직임이 그렇다.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자신감은 자칫 지나치면 ‘오만’으로 비치는 법. 협상 파트너를 감옥에 넣어서라도 뜻을 관철하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분명 오만이다. 차이나 리스크에 ‘감옥’이라는 항목이 하나 추가될 뿐이다.

지금 우리는 자신감과 오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거인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 그곳에서는 오늘도 1만2000여 개의 우리나라 기업이 중국 기업 및 정부와 가격 협상을 하고,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있다. 리오틴토 간첩 사건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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